[방송 현장에서]

욕 가르치는 방송

손 범 규[孫 範 奎] / SBS아나운서

   한동안 인기를 모았던 영화 ‘올드보이’의 한 장면을 살펴보자.
   이유도 모르고, 누가 잡아왔는지도 모른 채 15년 동안 독방에 감금당한 주인공 오대수(최민식 역)는 세상과 단절된다.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지 못하고 텔레비전으로만 세상과 소통(疏通)했던 주인공은 갑자기 더 넓은 감옥으로 불리는 세상으로 나온다. 모든 것이 어리둥절한 그가 다시 나온 세상에서 처음으로 만난 사람들은 불량 청년들(세상은 그들을 ‘깡패’라 부른다)이다. 감히 그들의 담배를 뺏어 핀 주인공은 그들에게서 처음으로 아주 심한 욕을 먹는다.

“아니 이런 XX새가...”(불량 청년 1의 살벌한 욕이다)
‘XX새? 처음 듣는다. 텔레비전은 욕을 안 가르쳐주니까...’(주인공의 생각)
   위의 주인공의 대사에 나타난 것처럼, 영화의 주인공은 텔레비전에서 가르쳐 주지 않은 욕을 세상에서 배웠지만 관객들은 영화를 통해 새로운 욕을 배운다. 글쓴이 또한 ‘XX새’는 영화에서 처음 들은 욕이지만 아직까지도 그 욕이 기억나는 걸 보면 영화의 감동(?)은 꽤나 오래 가나 보다.
   그런데 영화 주인공의 대사처럼 우리의 방송은 정말 욕을 가르쳐 주지 않는 걸까? 아쉽게도 현실은 그러지 못한다. 이런 식의 욕은 사용하지 않는다 해도 그에 버금가는 비속어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구체적인 방송 내용을 보자.
화려한 말발, 꼭지 돌았어, 위통 까고 (케이비에스  라디오 프로그램)
팰라면 감정을 섞어서 오지게 패라, 개 거품을 무는데 (에스비에스 텔레비전 프로그램)
뜨아, 바바이, 솔직히 염소잡았죠 (엠비씨 라디오 프로그램)
   이런 단어들은 특히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또래의 동질감을 표현하기 위해서, 쉽게 말해 집단따돌림 받지 않기 위해 ‘나도 이런 말, 이런 욕 안다’는 식의 사용이 잦다. 이러한 현상은 아무리 방송위원회에서 지적하고 방송사에서 자체 심의를 한다고 해도 쉽게 해결될 일이 아니다. 방송의 시청률이나 청취율을 높이고 싶다고 해서 언어 훈련이나 방송의 공영성에 대한 인식이 없는 진행자나 출연자를 마구잡이로 기용하는 방송 제작자가 먼저 반성해야 한다. 또 유행어나 이상한 언어를 구사해야만 세태에 뒤떨어지지 않고 인기가 올라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진행자나 출연자의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영화에서 ‘거시기’란 단어가 유행하면 방송 진행자와 출연자들은 너나 없이 ‘거시기’란 단어를 사용한다. ‘얼짱’이 인기를 얻자 방송은 뉴스, 교양, 오락 프로그램 모두가 ‘몸짱, 노래짱’에 이어 ‘얼꽝, 몸꽝’이란 단어까지 만들어 낸다. 사회 현상과 세태의 전달이 방송의 임무라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러나 이런 전달이 오히려 부작용과 잘못된 유행을 만들어 낸다면 이에 대한 책임 있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강도얼짱’까지 심각하게 보도하는 우리 방송, 그러나 그 방송 내용이 오히려 우리 사회의 잘못된 열풍을 부추긴다는, 외국 방송의 지적을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