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현장에서]

밸런타인데이와 초콜릿

손 범 규[孫 範 奎] / SBS아나운서

   2월의 방송에서 많이 나오는 단어 중의 하나는 ‘밸런타인데이’와 ‘초콜릿’이다. 사회의 경향과 흐름을 가장 먼저 반영하는 것이 방송이라지만 때만 되면 심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프로그램에서 밸런타인데이를 다루고 초콜릿을 먹게 만든다.
   그런데 요즘은 2월만 그런 게 아니다. 3월 14일 화이트데이에는 사탕을 먹어야 하고 다른 달 14일도 ‘Fourteenth Day'라고 해서 뭔가를 먹어야 하거나 기념해야 하는 이름이 있다. 4월 14일은 2월과 3월 초콜릿과 사탕을 먹지 못한 사람들이 자장면을 먹으며 외로움을 달래야 한다는 블랙데이이다. 자장면 다음은 카레이다. 블랙데이 이후 5월 13일까지도 애인을 못 구한 사람은 5월 14일에는 노란 옷을 입고 카레를 먹어야 한다. 하지만 애인을 구한 사람은 서로 사랑의 장미꽃을 주고받는다고 해서 5월 14일은 옐로데이나 로즈데이로 불린다. 6월 14일은 키스데이이다. 14일의 기념일에 만난 연인들이 입맞춤을 하는 날이지만 5월에 카레조차 못 먹은 사람들이 빨간 홍당무가 들어간 음식을 먹는 날이라고 해서 레드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7월은 은제품을 주고받거나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선심을 써야 한다고 해서 실버데이, 8월은 삼림욕을 하는 그린데이, 9월은 콘서트를 가거나 사진을 찍는다고 해서 뮤직데이, 또는 포토데이로 불린다.
   아직도 석 달이 남았다. 붉은 와인을 마셔야 한다는 10월은 와인데이, 오렌지 주스를 먹거나 영화를 봐야 하는 11월은 오렌지데이나 무비데이라고 하고, 남자가 여자에게 돈을 팍팍 쓴다는 의미나 연인끼리 서로 포옹하는 날이라는 12월 14일은 머니데이, 또는 허그데이이다. 결혼 기념일이나 아내의 생일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이 많은 기념일이 난감할 뿐이다.
   좋아하지 않아도 방송을 하려면 알고는 있어야겠기에 수첩에 적어 놨던 14일의 기념일이지만 소개할 때마다 답답하다. 잘못된 상술 때문에 별 연관이 없어 보이는 날을 돈 많이 써야 하는 기념일로 선정한 것도 그렇지만 그런 상술에 넘어가는 사람들이 많다니 단순한 재미로만 볼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서로 호들갑을 떨며 이런 날을 모르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떠드는 방송이 가장 먼저 반성해야겠지만...
   반성할 일은 또 있다. 2월의 방송에 자주 등장하는 초콜릿의 자막이 틀릴 때가 많다. 방송자막에서는 ‘초코렛’이나 ‘초콜렛’으로 잘못 사용되는데, 영어의 ‘chocolate'은 발음이 [t:kəlit]이므로 ‘초컬릿’이지만 둘째 음절은 ‘’보다는 ‘’로 발음하는 경향을 존중하여 ‘초콜릿’이 맞는 표기이다. 이 밖에도 방송에서 자주 잘못 표기되는 단어는 아래와 같다. 정확한 표기는 (   ) 밖에 있는 것들이다.

전자레인지(전자렌지), 스테이크(스텍), 카디건(가디간), 블라우스(브라우스), 살롱화(싸롱화), 소파(쇼파), 오리지널(오리지날)
   외국의 행사나 풍습을 무분별하게 방송하는 것도 문제지만 외래어의 정확하지 않은 잘못된 표기도 심각하다. 방송인들의 수첩이 정확한 외래어 표기 단어들로 채워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