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 감상]

김수영의 시 '눈'

김 옥 순[金 玉 順] / 국립국어연구원

1-1 눈은 살아있다./ 1-2 떨어진 눈은 살아있다./ 1-3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 2-1 기침을 하자./ 2-2 젊은 詩人이여 기침을 하자./ 2-3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2-4 눈더러 보라고 마음놓고 마음놓고/ 2-5 기침을 하자.// 3-1 눈은 살아 있다./ 3-2 죽음을 잊어버린 靈魂과 肉體를 위하여/ 3-3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4-1 기침을 하자./ 4-2 젊은 詩人이여 기침을 하자./ 4-3 눈을 바라보며/ 4-4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4-5 마음껏 뱉자.  (김수영, ‘눈’, “거대한 뿌리”, 문학과지성사 )
   김수영(1921∼1968)의 시 ‘눈’은 정돈된 구조와 친근한 소재로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이 시는 ‘눈’이란 단어 의미를 다의적(多義的)으로 해독할 때 묘미가 드러난다. 이 시에서 눈이란 단어는 여덟 번이나 등장하지만 그 뜻은 매번 같지 않다. 눈은 표면적으로 눈[雪](1-3)을 나타낸다. 이 눈[雪]에서 연상되는 것으로 하얀 아름다움, 청결함, 결벽증, 추위, 기침(2-3), 가래(4-4) 등이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눈을 사람의 눈[目]으로 해석할 때, 특히 김수영이 참여 시인이라는 면모로 볼 때 이 시의 눈은 사회를 이끌어가는 위정자의 눈(2-3)이고, 지도자의 국가 정책을 관찰하고 있는 일반 시민의 눈(2-4)이고, 누구도 쉽게 말하기 힘든 사회의 어두운 면을 시로써 고발하는 젊은 시인의 눈이고, 죽으면 없어지는 현실을 영속적인 역사와 문화로 만들 새벽을 기다리는 예술가의 눈(3-3, 4-3)이다.
   구체적으로 제1연의 ‘떨어진 눈’은 하늘에서 마당에 떨어진 눈[雪](1-3)이면서, 떨어진 거리에서 상대를 관찰할 줄 아는 지성적인 눈[目](1-2)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겨울날 도처에 쌓인 눈이 갑자기 사람의 눈동자로 변하여 반짝거리며 응시한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제2연에서 눈으로 본 사실을 입으로 발표하는(기침하는) 젊은 시인의 역할은 상징적이다. 사실 점잖은 자리에서 갑자기 일어나는 기침은 사람을 당황스럽게 만든다. 그렇지만 ‘기침을 하자’는 선동적인 발언은 겨울 감기에 잘 걸리는 사람들에게 시원하기도 하다. 남의 눈치를 보지 말고 마음껏 기침을 하자. 솔깃한 구호이다. 이것을 젊은 시인이 창작하는 행위로 바꾼다면 그것은 사회의 아픈 문제점을 관찰하고 그것을 감추지 말고 알리자는 시민 사회의 참여 정신이 된다. 2-3처럼 시인이 ‘눈 위에 대고’ 창작을 하라면 그것은 정치가 권력자의 눈 앞에 대고 글을 쓰라는 말이 되고, 기침을 ‘눈더러 보라’고 한다면 사실을 일반 국민들이 보라고 글을 쓰라는 뜻이 된다.
   제3연에서 3-2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눈이 살아 있다는 것은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격언처럼 죽음을 잊어버린 세계를 암시한다. 살아 있는 밝은 눈으로 표현되는 시인의 역할은 ‘기침하다→말하다→창작하다’의 시적 의미 전환에서 잘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시인을 반사회적인 성향을 지닌 존재로 보는데 그것은 시인이 낮의 세계(노동의 세계)에 속하기보다 밤의 세계(꿈꾸고, 생각하고, 즐기는, 미적인 세계)에 속하기 때문이다. 시의 궁극적인 목표는 돈을 벌어 몸을 살찌우는 낮의 세계와 영혼을 살찌우는 밤의 세계를 아우르는 총체적인 미적 세계이다. 즉 죽음과 삶을 넘어서는 영원한 가치를 지닌 예술작품과 결합할 때 시인의 눈은 살아 있다.
   4연에서 젊은 시인에게 기침하면서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뱉으라는 표현은 예술 창작이 마냥 아름다운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반어적으로 사용한 ‘밤새도록 고인 가래’라는 표현은 시인만이 할 수 있는 어두운 사회에 대한 고발의 붓 놀림을 말하는 것일 수 있다. 여기서 젊은 시인은 추우면 춥다고 기침하는 존재, 경고하는 존재여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불건강한 것을 건강하다고 포장하거나 감추지 말고 아프다고 표현할 줄 아는 시민 정신을 이 시에서 요구하는 것이다. 젊은 시인은 마음 놓고 시를 써라. 권력자나 정치가 앞에 대고, 국민들이 보라고 마음 놓고 말하자는 시인의 구호에서 사회를 향한 열린 관심이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