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 발음법의 이해]

연음 범칙의 예외

김 선 철(金 銑 哲) / 국립국어연구원

   어느 언어든지 말하는 이의 태도나 감정, 말하는 속도, 말하는 당시의 상황 등에 따라서 말소리에 변화가 생기게 된다. 예를 들어서 말하는 이가 격한 감정을 가지면 말소리가 크고 높게, 빠르게 변한다. 격한 감정이 아니더라도 시간이 급하거나 버릇에 의해서 말소리가 빨라질 수 있다. 주변이 시끄러우면 말소리가 느려지면서 커질 수 있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말소리가 빨라지면 끊는 단위가 달라지면서 장단과 자음의 발음이 변하게 된다. 다음 예를 보자(‘/’는 말할 때 끊는 위치를 나타낸다).

(1)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정이 흐르게 마련이다.
가. 느린 속도로 말할 때 나타날 수 있는 발음의 한 예
[사:람과 / 사:람 / 사이에는 / 정이 / 흐르게 / 마려니다]
나. 빠른 속도로 말할 때 나타날 수 있는 발음의 한 예
[사:람(랑)과 사람 싸이에는 / 정이 으르게 마려니다]
다. 보통 속도로 말할 때 나타날 수 있는 발음의 한 예
[사:람과 사람 / 사이에는 / 정이 흐르게 / 마려니다]
   우리나라의 공통어로 제정한 표준어는 사적인 자리보다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사용하도록 권고하고 있는 것인데, 공식적인 자리에서라면 기본적으로 천천히 또박또박 말하는 태도를 가정할 수 있다. 그래서 표준 발음법 규정 자체에서 밝히지는 않고 있지만 여러 군데에서 이러한 발화 속도가 전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 표준 발음법 제6항 (2)의 다만 규정에서 “합성어의 경우에는 둘째 음절 이하에서도 분명한 긴소리를 인정한다”고 되어 있고 그 예로 “반신반의[반:신 바:늬/반:신 바:니]”와 “재삼재사[재:삼 재:사]”를 들고 있다. 그런데 국어는 이런 긴 단어의 중간에 쉼을 넣어 단어가 여러 개인 것처럼 발음할 수 있는 것이 원칙이다. 이 때 단어 내부에 쉼이 생긴다는 것은 천천히 또박또박 발음한다는 뜻이다.
   둘째, 표준 발음법 제18항의 붙임에 ‘책 넣는다, 흙 말리다’등의 두 단어를 이어서 한 마디로 발음하는 경우가 있음을 언급하고 있다. 이런 단어 결합을 한 마디로 이어서 발음한다는 것은 보통 속도 이상으로 말할 경우를 말하며, 원래대로(두 마디로) 발음한다는 것은 천천히 또박또박 말한다는 뜻이다.
   셋째, 표준 발음법 제21항에서는 다음과 같은 발음 변화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한다(별표는 표준 발음이 아닌 것을 가리킨다).
(2)  감기[감:기](*[강:기])   옷감[옫깜](*[옥깜])   있고[읻꼬](*[익꼬]) 
      있고[읻꼬](*[익꼬])   꽃길[꼳낄](*[꼭낄])   젖먹이[전머기](*[점머기]) 
      문법[문뻡](*[뭄뻡])   꽃밭[꼳빧](*[꼽빧])    
   이런 발음 변화는 실제로 빠른 속도로 말할 때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2)와 같은 단어들을 틀리게 발음하지 않으려면 보통 속도 이하로 말하여야 한다.
   표준어의 음성 부문을 다루는 표준 발음법 규정이 이와 같이 보통 속도 이하의 빠르기를 전제로 하고 있음을 알아보았다. 그런데 이것이 뜻하는 바가 더 빠르게 발음하면 표준어가 아니라는 것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더 빠르게 말할 경우의 발음법이 보충될 필요가 있겠으나, 이런 방식으로 표준 발음법 규정을 늘리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