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 감상]

윤동주의 시 ‘序詩’

김 옥 순(金 玉 順) / 국립국어연구원

①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②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③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序詩, 1941. 11. 20.>
      윤동주(尹東柱, 1917-1945)의 시 ‘序詩(서시)’는 같은 제목이 시집마다 서문격으로 실리는 흔한 제목인 2연 9행의 짧은 시이지만 한국 근대시에서 이 작품이 갖는 위력은 막강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숱한 평론가들이 한 번씩 다룬 이 시에서 첫 문장의 핵심어는 ‘하늘’이다. 동양의 윤리 의식의 상징인 하늘[天]은 “하늘이 무섭지 않은가”라고 못된 행동을 한 사람의 양심을 깨우칠 때 흔히 말한다. 하늘은 사람의 양심을 비추는 거울로서 스스로를 되돌아보아 한 점 부끄럼이 없어야 할 어떤 윤리적이고 규범적인 대상이다. 두번째 문장의 핵심어는 ‘모든 죽어가는 것’이다. 첫째 문장에 등장하는 잎새는 두 번째 문장에 오면 ‘모든 죽어가는 것’으로 바뀐다. 이 시에서 ‘말하는 사람’(화자)이 ‘모든 죽어가는 것’에 대하여 측은지심(공자의 어질 인[仁])을 지니고 바라보는 모습에서 유교 사회의 선비상(像)이 투영된다. 유교 사회의 지식인인 선비처럼 ‘모든 죽어가는 것’에 대하여 측은지심을 지니는 것이 바로 시인 자신의 사명(길 도[道])임을 말한다. 현대적 의미로는 생명을 존중하는 환경운동가의 모습일 수 있다. 2연에서는 1연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듯 보이던 ‘별’이 핵심어로 떠오르면서 ‘모든 죽어가는 것’에 대립되는 존재로 떠오른다.
      하늘은 사실 밝을 때 쳐다보아야 제 맛이 난다. 해가 뜬 낮의 하늘이어야 잎새(잎사귀, 이파리)도 광합성을 하고 자라며 사람도 햇빛을 못 보면 우울증에 걸린다. 그렇게 볼 때 잎새와 사람은 똑같이 ‘모든 죽어가는 것’에 속함을 알 수 있다. 이 생명 있는 존재들은 햇볕과 자양분(대표적으로 물)과 바람을 필요로 한다. 이 성분들은 모두 하늘에서 내려온다. 그래서 옛사람들이 하늘을 존중했나 보다.
      마찬가지로 밤이 되면 하늘의 별빛이 지상을 비춘다. 반면에 잎새는 지상의 연약한 존재이다. 별과 잎새는 누가 봐도 경쟁이 안 된다. 어둠 속에서 광합성을 못하고 죽는 잎새와 달리 별은 밤에 빛나고, 생명이 한 계절인 잎새와 달리 별의 생명은 거의 무한한 시간이다. 바람이 불면 잎새는 ‘일렁이며’ 정신을 못 차리고 곤두박질을 치는데 반하여 별에게는 바람이 스칠 뿐이다. 우주적 존재인 별과 지상적 존재인 잎새의 공통점은 바람이 이들 사이에 흐른다는 점이다. 광막한 우주에서 이들을 연결하는 것은 바로 바람이다. 바람은 잎새를 떨어뜨리기도 하지만 별과 잎새를 연결시키기도 한다. 여기에 중간적 존재로 사람이 등장한다.
      사람과 별과 잎새를 비교하면, 사람이 웬만한 바람에는 끄떡도 않는다는 점에서 잎새보다는 강하지만 별보다는 못하고, 잎새처럼 땅에 뿌리를 박고 살지는 않지만 별처럼 우주에 떠 있는 존재도 못 된다. 파스칼(Pascal, Blaise, 1623~1662)의 말처럼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인가? 지상적이기에는 너무 뜻이 웅대하고 천상적이기에는 너무 연약한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인간은 잎새보다는 그래도 낫다고 생각하기에 오늘도 죽어 가는 잎새를 보호하지 못하는 자신의 무력함에 가슴 아파하며, 바람 속에 죽어 가는 잎새와 같은 존재를 바람 속에 늠름한 별과 같은 존재로 바꿀 그런 능력을 자신에게서 기대한다. 그래서 이 시의 시제도 과거(괴로워했다)에서 미래의 다짐(사랑해야지, 걸아가야겠다)으로 이어지다가 현재(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로 끝난다. 니체(Nietzsche, Friedrich Wilhelm, 1844~1900)도 “나를 죽이지 못한 것은 나를 강하게 한다”라고 했듯이 ‘잎새 같은 나’를 바람이 죽이지 못하면 나는 ‘별과 같은 존재’로 강해지리라는 다짐도 나타난다. 강한 것에게는 찬양의 노래를, 약한 것에는 연민의 사랑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