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용 표현의 이해]

관용 표현의 사동

김 한 샘 / 국립국어연구원

      명사와 동사로 이루어진 관용 표현이 동작이나 상태를 나타내는 서술의 기능을 할 때, 주체가 제3의 대상에게 동작이나 행동을 하게 하는 사동을 표현하려면 관용 표현을 구성하는 동사에 ‘ -이-, -히-, -리-, -기-, -우-’ 등을 더하면 된다.

(1) ㄱ. 박 사장이 동창회 회장 감투를 썼다.
ㄴ. 요즘 세상에 실력 없는 사람에게 감투를 씌우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2) ㄱ. 시장에서 사면 쌀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바가지를 썼어.
ㄴ. 혹시 아저씨 저를 바가지 씌우시는 거 아니에요?
ㄷ. 혹시 아저씨 저한테 바가지 씌우시는 거 아니에요?
(3) ㄱ. 김 실장의 숨겨진 과거가 베일을 벗었다.
ㄴ. 최 형사가 미해결 사건을 베일을 벗겼다.
ㄷ. 최 형사가 미해결 사건의 베일을 벗겼다.
      (1~3)은 ‘감투를 쓰다, 바가지를 쓰다, 베일을 벗다’등의 관용 표현을 구성하는 동사에 동작을 입힘을 나타내는 접사가 붙어 관용 표현 전체가 어떤 대상에게 동작이나 행동을 하게 함을 나타내는 예이다. ‘쓰다 , 벗다’ 가 원래 타동사이기 때문에 관용 표현을 구성하는 명사에 결합한 조사 ‘을/를’은 변하지 않았다. 아래 (4~6ㄱ)을 보면 각각의 관용 표현을 구성하는 ‘부르다, 마르다, 트다’ 가 자동사이므로 관용 표현을 구성하는 명사가 조사 ‘이/가’와 함께 쓰였다. 그런데 관용 표현을 구성하는 동사에 동작을 입는 대상 동작의 입힘을 나타내는 접사를 붙이면 동작을 입는 대상이 필요하기 때문에 (4~6ㄴ)의 ‘ 배를, 씨를, 움을’처럼 관용 표현을 구성하는 명사가 조사‘을/를’ 과 함께 쓰인다.
(4) ㄱ. 김 사장은 요새 배가 부른지 규모가 작은 사업은 안 맡습니다.
ㄴ. 우리가 열심히 일하면 간부들 배를 불리는 거지 뭐.
(5) ㄱ. 요새는 시장에 나가도 국산 농산물은 씨가 말랐어요.
ㄴ. 이런 나쁜 관습은 씨를 말려야 해요.
(6) ㄱ. 80년대에 들어서면서 시민 의식이 움 트기 시작했습니다.
ㄴ. 김 박사는 이 분야 연구의 움을 틔우신 분이십니다.
      (1~6)의 관용 표현들은 모두 동작의 입힘을 나타내는 접사가 붙어 관용 표현 전체가 대상에게 동작이나 행동을 하게 하는 사동을 나타내게 된 예이다. 그러나 관용 표현을 구성하는 동사에 사동을 나타내는 접사를 붙여도 관용 표현 전체가 사동을 나타내지는 않는 경우도 있다.
(7) ㄱ. 어머니는 아들이 며칠째 돌아오지 않아 가슴이 탔다.
ㄴ. 어머니는 아들이 며칠째 돌아오지 않아 가슴을 태웠다.
(8) ㄱ. 의견이 맞지 않아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이 모두 목소리가 높아졌다.
ㄴ. 의견이 맞지 않아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이 모두 목소리를 높였다.
      (7~8)의 ㄴ은 ㄱ의 관용 표현을 구성하는 동사에 사동 접사가 붙고 이에 맞추어 명사에 결합하는 조사도 ‘을/를’로 교체되었으나 관용 표현 전체가 동작의 입힘을 나타내지는 않고 ㄱ과 같은 뜻을 나타낸다. 이는 ‘가슴’, ‘ 목소리’가 동작을 입힐 제 3의 대상이 아니라 각각 주어인 ‘어머니’와 ‘사람들’의 일부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