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키고 싶은 말들
예전에 서울 말씨를 쓰는 연세가 지긋한 웃어른께 세배를 갔을 때의 일이다 . 한참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리는 개을러서 아직 떡도 못했어요.”라고 말씀을 하셨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게을러서’가 아닌 ‘개을러서’를 쓰는 것이 흥미로웠다. 그래서 “방금 ‘개을러서’라고 하셨는데 ‘게을러서’와 차이가 있습니까?” 하고 여쭈었다. 그러자 ‘게으르다’는 보기 싫을 정도지만 ‘개으르다’는 그래도 봐 줄 만한 정도라고 대답을 해 주셨다. 그때까지 사전에만 올라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던 ‘개으르다’가 실제로 ‘게으르다’와 구별되어 쓰이는 것을 확인한 셈이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개으르다’와 ‘게으르다’를 차이를 잊고 ‘게으르다’ 하나로만 살고 있다. 심지어는 국어사전에 ‘개으르다’라는 잘못된 말이 올라 있다는 어이없는 지적을 하는 일이 있을 정도다. 단어 하나를 쓰지 않는 것은 대수로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개으르다’를 버림으로써 잃게 되는 것은 단어 하나에 그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태도 하나하나를 나눌 줄 알았던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의 섬세한 마음까지 잃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경우로 ‘알은체하다/알은척하다’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일상생활에서는 ‘아는 체하다/아는 척하다’가 이 말 대신 널리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