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운의 시 '알ᄉ 수 업서요'
한용운(1879~1944)의 시 '알ᄉ 수 업서요'에서 나타나는 광활한 자연 풍경은 하나 하나가 사람의 이미지와 대응되면서 이미지의 비유적 연결을 보여주고 있다.
자연풍경 | 오동잎---------------- 누구의 발자취 | (사람) 관세음보살 |
이미지 | 푸른 하늘--------------누구의 얼굴 | 이미지 |
A | 나무의 향기------------누구의 입김 | B |
시냇물-----------------누구의 노래 | ||
연꽃-------------------누구의 발꿈치 | ||
저녁놀-----------------누구의 詩 |
임의로 느슨하게 연결되는 이 자연 이미지군과 사람의 신체 및 행위를 나타내는 이미지들을 결합해 보면 한 쪽에서는 자연 풍경이 떠오르고, 다른 쪽에서는 관세음보살의 화신과 같은 전형적인 불교적 여성의 모습이 떠오른다. 왜 관세음보살의 화신이 떠오르는가 하면 전체 시가 보여주는 광활한 스케일 때문이기도 하지만 특히 '연꽃같은 발꿈치로 갓이 없는 바다를 밟고 옥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날을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詩입니까'의 구절 때문이다. 발꿈치는 바다 위에 뜬 연꽃에다 두고(연꽃은 물 위에 피니까) 끝이 없는 바다를 밟고 서서 옥같은 손으로는 또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날을 곱게 단장하는 '거인 여성'의 이미지는 단순한 인간 여성의 비유로 간주하기에는 너무 광대한 우주적 형상을 보여주고 있다. 동시에 불교적 상징인 연꽃 위에 서 있으므로 관세음보살과 같은 아름다운 여성의 형상을 한 대자대비한 부처님이, 거대한 우주적 스케일로 성체 시현(hierophany)한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그리고 이미지의 비유체계에서 가장 마지막 대응물이 詩임을 주목할 수 있다. 이 시에서 사용한 '누구의'라는 의문사가 단순한 수식어적 표현이 아니라는 것은 이렇게 총체화되는 이미지군을 통해서 인간의 수식으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존귀한 존재임을 암시하고 있다.
여기서 시인은 단순한 부처님의 성체시현을 찬양하고 끝나지 않는다. 재가 기름이 되는 자연의 순환과 재생의 긴 과정을 통해 어두운 밤을 비추어 주듯이, 구세주의적 등불의 이미지는 자연과 더불어 시인의 가슴에 타오르고 있음을 노래하고 있다. 결국 앞의 누구의 발자취이며, 누구의 얼굴이며, 누구의 입김이며, 누구의 노래이며, 누구의 시인가 하는 자연에 대한 외경심과 함께 '자연 경외의 가르침은 시인 자신의 가슴에 '약한 등불'을 타오르도록 촉발시키는 불교적 이상 세계의 교육으로 구체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우리의 감각 기관과 의식에 감촉되어 받아들여지는 부처님의 교화가 만물에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