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용 표현의 이해]

관용 표현의 피동

김한샘 / 국립국어연구원

명사와 동사로 이루어진 관용 표현이 동작이나 상태를 나타내는 서술의 기능을 할 때, 주어의 동작이나 상태가 남에 의해 바뀌는 것을 표현하려면 관용 표현을 구성하는 동사에 '-이-, -히-, -리-, -기-, -우-' 등을 더하면 된다. 이때 앞에 오는 명사는 남에 의해 움직이는 주체를 나타나게 되므로 주격 조사 '이, 가'와 함께 쓰인다.

(1) ᄀ. 김 형사가 도난 사건을 매듭을 풀었다.
ᄂ. 김 형사가 도난 사건의 매듭을 풀었다.
ᄃ. 김 형사가 도난 사건을 해결했다.
ᄅ. (김 형사에 의해) 도난 사건이 매듭이 풀렸다.
ᄆ. (김 형사에 의해) 도난 사건의 매듭이 풀렸다.
ᄇ. (김 형사에 의해) 도난 사건이 해결되었다.
(2) ᄀ. 자금 문제가 박 사장을 발을 묶었다.
ᄂ. 자금 문제가 박 사장의 발을 묶었다.
ᄃ. 자금 문제가 박 사장을 방해했다.
ᄅ. (자금 문제 때문에) 박 사장이 발이 묶였다.
ᄆ. (자금 문제 때문에) 박 사장의 발이 묶였다.
ᄇ. (자금 문제 때문에) 박 사장이 방해를 받았다.

(1ᄅ)에서 '풀리다'는 남의 힘에 의해 움직이는 것을 나타내므로 함께 관용 표현을 구성하는 '매듭'이 주격 조사 '이'와 함께 쓰이게 되었으며, '매듭이 풀리다' 전체가 이런 피동의 뜻을 나타내게 되자 동작의 대상이었던 '도난 사건'이 주어가 되었다. '매듭을 풀다', '매듭이 풀리다'와 같은 관용 표현 전체가 '해결하다', '해결되다' 등과 같은 하나의 의미를 나타내기는 하지만 구성 요소인 '매듭'이 명사의 성질을 잃지 않아서 다른 명사의 수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1ᄂ), (1ᄆ)의 '도난 사건의 매듭'과 같은 표현이 가능하다. (2ᄀ~ᄂ)의 '발을 묶다'와 (2ᄅ~ᄆ)의 '발이 묶이다'도 (1)의 '매듭을 풀다', '매듭이 풀리다'와 같은 관계이다. '묶다'에 동작을 입음을 나타내는 '-이-'를 더하고 '발'을 주격 조사 '이'와 함께 씀으로써 '발이 묶이다' 전체가 피동을 나타낸다. '박 사장의 발'과 같이 동작의 대상이 되는 '박 사장'이 관용 표현을 구성하는 명사인 '발'을 수식할 수 있는 것은 '발을 묶다'가 '방해하다'라는 하나의 의미를 나타내기는 하지만 이런 관용 표현의 의미가 실제로 사람의 발을 묶는 행위에서 출발한 것이라 '발'의 원래 의미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발을 묶으면 움직일 수가 없고, 움직일 수가 없으면 다른 일을 할 수가 없다는 데에서 '발을 묶다'가 '방해하다'의 뜻을 나타내게 된 것이다.

(3) ᄀ. 위원장이 인사말로 부산 국제 영화제를 막을 열었다.
ᄂ. 위원장이 인사말로 부산 국제 영화제의 막을 열었다.
ᄃ. 위원장이 인사말로 부산 국제 영화제를 시작했다.
ᄅ. (위원장의 인사말로) 부산 국제 영화제가 막이 열렸다.
ᄆ. (위원장의 인사말로) 부산 국제 영화제의 막이 열렸다.
ᄇ. (위원장의 인사말로) 부산 국제 영화제가 막을 열었다.
ᄉ. (위원장의 인사말로) 부산 국제 영화제가 시작했다.

'시작'의 의미를 나타내는 (3ᄀ~ᄂ)의 '막을 열다'와 (3ᄅ~ᄆ)의 '막이 열리다'도 (1), (2)의 '매듭을 풀다'와 '매듭이 풀리다', '발을 묶다'와 '발이 묶이다' 등과 같은 관계이다. 그런데 (3ᄅ)과 (3ᄇ)을 보면 시작의 대상이 되는 '부산 국제 영화제'가 주어로 쓰일 때 '막이 열리다'와 '막을 열다' 두 가지가 다 서술어로 쓰일 수 있다. 이는 '막을 올리다'가 '시작하다'와 같은 의미적 특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시작하다'는 (3ᄃ)과 같이 '어떤 대상이 시작하도록 만들다'라는 의미와 (3ᄉ)와 같이 '무엇이 시작하다'라는 의미 두 가지를 다 나타낼 수 있다. 같은 뜻을 나타내는 '막을 열다'도 (3ᄀ), (3ᄇ)처럼 능동과 피동의 의미를 모두 나타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