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현장에서]

방송원과 아나운서

손범규(孫範奎) / SBS아나운서

작년 11월, 금강산 관광객 50만 명을 돌파할 즈음에 금강산에 다녀왔다. '고성군 현대구'라고 불릴 만큼 북측(남북은 서로를 부를 때 북한, 남한이라고 하지 않고 남측, 북측이라고 부르기로 합의하였다) 땅이라고 느끼기 어려웠던 금강산에서는 북한의 방송이나 사람을 접하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방송 사상 최초로 육로를 통해 3백 명이 넘는 방송단과 중계차가 북으로 갔던 평양 방문(10월 5일부터 10월 9일까지)에서는 많은 북측 사람과 방송 프로그램을 대할 수 있었다.
    조선중앙방송 방송원 전성희(북측에서는 아나운서를 방송원이라고 부른다)는 다시 만나고 싶은 동료이자 선배이다. 북측 조선중앙방송의 8시 뉴스의 진행자인 전성희 씨는 KBS의 <전국노래자랑> 평양 공연의 사회자로 남측에 잘 알려져 있다. 전성희 씨는 이번 남북 행사에서 통일 음악회와 통일 농구 장내 진행을 맡아 남측 시청자들에게 한 번 더 얼굴이 알려졌다. 북측의 어느 방송원보다도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그녀, 공식 행사의 모습만큼이나 딱딱하고 절제된 모습을 개인적인 만남에서도 보여 주었다. 무도회에서 얘기를 나누며 내가 남측의 방송원이라는 인사를 하자 같은 직종의 후배를 만나서인지 잠시 반갑고 놀랍다는 표정을 보였지만 그때뿐이었다. 그날 밤, 나는 남측 아나운서로는 최초로 인민문화궁전에서 만찬의 공식 행사 사회를 맡았고 그녀는 참석자로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객석에 앉아 있었다. 식사 시간에 잠깐 스쳐 지나간 그녀는 나를 애써 모르는 척했다. 나도 굳이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서로의 마음에 서늘한 바람이 스쳐 가는 순간이었다. 북측의 방송원들은 화술에 능통하고 실력도 있어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당성이 강해야 하는 최고의 지도 계층이다. 그러기에 우리의 이번 만남은 서로의 마음의 벽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믿는다, 그 벽은 우리의 만남이 잦아지면 허물어질 것을.
    다음은 음악회와 농구 대회가 열렸던 '류경정주영체육관' 개관식을 보도한 노동신문의 기사 내용이다.

1) 체육관 개관식이 현지에서 진행되였다. - 보조경기장으로 구성되여있다.
2) 평양에 체육시설을 건설할데 대한 애국적 발기 - 청년들과의 사업을 강화할데 대한

위의 1)2)는 신문을 읽을 때 눈에 띄는 예들이다. 먼저 1)은 맞춤법 규정에 따른 차이이다. '어간의 모음이 ㅣ, ㅐ, ㅔ, ㅚ, ㅟ, ㅢ 인 경우' 남측에서는 '어'로 적는데 북측에서는 '여'로 적는다. 즉 남에서는 '개다-개어, 되다-되어'가 되지만 북에서는 '개다-개여, 되다-되여, 베다-베여'가 된다. 2)는 관형형 어미의 시제 표시와 띄어쓰기에서 차이가 생긴 것이다. 남쪽 식으로 쓰면 '-는 데 (대한)'가 된다.
    규범 문법 안에서 차이를 놓고 보자면 몇 가지를 지적할 수 있겠지만 북한의 방송원, 기자, 안내원(역시 사상적으로 강한 무장이 되어 있다)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도 일반적인 대화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차이를 인정하고 그 격차를 줄여 나가려는 우리의 열린 마음이 필요할 뿐이라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