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용 표현의 이해]

관용 표현이 포함된 문장의 구조

김한샘 / 국립국어연구원

대부분의 관용 표현에 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나타내는 표현이 대응한다. 예를 들어 '바가지를 쓰다'라는 표현은 실제로 바가지를 머리에 얹어 덮는다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일 수도 있고 '실제 가격보다 비싸게 값을 지불하여 억울한 손해를 보다'나 '억울하게 어떤 일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되다'라는 관용적인 의미일 수도 있는 것이다. 어떤 표현이 실제 문장에서 쓰일 때 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나타내느냐 관용적인 의미를 나타내느냐에 따라 문장의 구조가 달라질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같은 형태이지만 어떤 의미냐에 따라 같이 쓰이는 말들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1) ㄱ. 나는 머리가 지끈거리고 구역질이 나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ㄱ'. 나는 어디선가 풍겨오는 튀김 냄새에 구역질이 났다.
ㄴ. 그는 자신의 무능력에 구역질이 났다.
(2) ㄱ. 입으로 활줄을 당기어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딴 선수도 있었다.
*ㄱ'. 입으로 활줄을 당기어 흠뻑 점수를 딴 선수도 있었다.
ㄴ. 철수는 그녀에게 점수를 따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ㄴ'. 이번 기회에 흠뻑 점수를 따 두면 좋겠지.

(1)의 '구역질이 나다'가 '메스꺼워서 뱃속에 든 것을 밖으로 뱉어 내다'라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나타낼 때는 주어만 있으면 뜻이 통한다. ㄱ'과 같이 '튀김 냄새에'와 같은 말과 함께 쓰일 수도 있지만 '어디선가 풍겨오는 튀김 냄새에' 전체를 빼도 문장이 성립하는 것이다. 반면 '구역질이 나다'가 '지겹다'라는 관용적 의미로 쓰일 때는 반드시 무엇 때문에 지겨운지를 밝혀야 한다. ㄴ에서 '무능력에'가 빠지면 뜻이 통하지 않는다. (2)의 '점수를 따다'도 '어떤 일에서의 성적을 나타내는 점수를 얻다'라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 '누구에게 잘 보이다'라는 관용적 의미의 두 가지로 쓰일 수 있다. '점수를 따다'가 관용적 의미로 쓰인 ㄴ문장에서 '그녀에게'를 빼면 문장이 성립되기는 하지만 문맥이 없이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쓰였는지 관용적 의미로 쓰였는지 판단하기 힘들다. 이런 경우에는 '그녀에게'를 같이 써 주어야 문장의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 그런데 ㄴ'의 경우에는 누구에게 점수를 땄는지를 밝히지 않아도 '잘 보이다'의 뜻으로 쓰였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점수를 따다'를 꾸민 '흠뻑'이라는 말이 관용적인 의미로 쓰였을 때만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ㄱ'에서 볼 수 있듯이 '점수를 따다'가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쓰일 때는 '흠뻑'이라는 말과 어울리지 않는다. 어떤 표현이 관용적인 의미를 나타낼 때는 의미를 분명하게 하기 위해서 문장에 적당한 수식 어구를 넣는 경우가 많다.

(3) ㄱ. 선미가 사정없이 현태의 가슴을 때렸다.
ㄱ'. 현태의 가슴을 선미가 사정없이 때렸다.
ㄴ. 다시는 신영을 만날 수 없다는 절망감이 가슴을 때렸다.
*ㄴ'. 가슴을 다시는 신영을 만날 수 없다는 절망감이 때렸다.

(3)의 '가슴을 때리다'는 (1), (2)와 달리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쓰일 때와 직설적 의미로 쓰일 때 문장의 구조가 같다. ㄱ의 '선미가', ㄴ의 '절망감이'와 같은 주어만 있으면 문장이 성립된다. 그런데 ㄴ과 같은 말들로 이루어지고 순서만 바꾼 ㄴ'는 뜻이 통하지 않는다. '가슴을 때리다'가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쓰인 경우 ㄱ'처럼 '가슴을'과 '때리다'가 떨어져 있어도 어색하지 않은데 관용적 의미로 쓰인 ㄴ'가 말이 되지 않는 것은 관용 표현으로 쓰일 때는 '가슴을 때리다' 전체가 '엄습하다'라는 하나의 의미를 나타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