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 발음법의 이해]

소리의 길이

김선철(金銑哲) / 국립국어연구원

음악의 3대 요소는 박자(리듬), 가락(멜로디), 조화(하모니)이다. 말소리를 이루는 것들에서 분절음을 제외하고 남는 것들을 통틀어 '운율'이라고 하는데, 운율의 3대 요소가 음악의 3대 요소와 비슷하다. 먼저 말소리의 높이는 음악의 가락과 상통한다. 서울말에서는 말소리의 높이가 억양을 이룬다. 말소리의 길이와 세기는 음악의 박자에 해당한다. 이러한 운율의 3대 요소 가운데 소리의 길이는 서울말에서 단어의 의미를 달라지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아주 중요하다. 다음 문장을 보자.

(1) 가. 저 사람은 말[말]이 많다.
나. 저 사람은 말[말:]이 많다.

(1가)는 그 사람이 말(馬) 농장 주인쯤 돼서 가지고 있는 말의 마리 수가 많다는 뜻이고, (1나)는 그 사람이 말수가 많다는 뜻이다. 이렇게 길이만 달라져서 뜻이 바뀌는 단어의 쌍이 상당히 존재한다. 대표적인 것들로 다음과 같은 단어들이 있다.

(2) 눈(眼), 눈:(雪) 밤(夜), 밤:(栗) 사과(沙果), 사:과(謝過), 업다(負), 없:다(無) 벌(罰), 벌:(蜂) 정(丁), 정:(鄭)...

통계를 보면 『표준국어대사전(1999)』의 주표제어 440,594개 중에서 긴소리가 있는 것이 67,401개, 즉 15.3% 정도의 비율이라고 한다.
    그런데 긴소리를 지니는 단어가 다른 단어 뒤에 붙어서 합성어가 되는 경우에는 긴소리를 잃게 된다. 즉 긴소리는 단어의 첫 음절에서만 유지되는 법칙이 있다. 이러한 예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3) 싸락눈(*[싸랑눈:]), 군밤(*[군밤:]), 거짓말(*[거:진말:])....

명사는 그 뒤에 오는 조사나 기타 다른 요소들의 영향을 입어 짧은 소리가 되는 일이 없다.
    (2)에서 볼 수 있듯이 용언도 소리의 길이차를 보인다. 명사와 다른 점은 원래의 긴소리가 짧아지는 현상과 더불어 짧은 소리가 길어지는 현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전자의 예는 다음과 같다.

(4) 가. 감다[감:따] - 감으니[가므니] 밟다[밥:따] - 밟으면[발브면]
신다[신:따] - 신어[시너] 알다[알:다] - 알아[아라]
(예외: 끌다, 떫다, 벌다, 썰다, 없다)
나. 감다[감:따] - 감기다[감기다] 꼬다[꼬:다] - 꼬이다[꼬이다]
밟다[밥:따] - 밟히다[발피다]
(예외: 끌리다[끌:리다], 벌리다[벌:리다], 없애다[업:쌔다])

위 예들 중 (4가)는 단음절인 용언 어간에 모음으로 시작되는 어미가 결합되는 경우이고, (4나)는 용언 어간에 피사동 접미사가 결합되는 경우이다.
    반대인 장모음화는 두 음절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없어지는 음절의 길이가 남는 소리에 반영되는 현상이다.

(5) 보아 - 봐[봐:], 기어 - 겨[겨:], 되어 - 돼[돼:], 두어 - 둬[둬:], 하여 - 해[해:]
(예외: 오아 - 와, 지어 - 져, 치어 - 쳐, 찌어 - 쪄)

이 모든 장음화 현상은 끊어 말하기와 깊은 관련이 있다. 즉 끊어 말하기 단위의 처음에 오는 경우에만 장음이 유지되며, 같은 단어라도 말이 빨라지면서 끊어 말하기 단위 중간에 장음을 가진 단어가 오면 짧아지는 법칙이 있다. 다음 문장을 보자(/ - 조금 끊음. // - 많이 끊음).

(6) 가. 사(:)람은 // 만물의 / 영장이다.
가'. 갈 사람은 / 가야지.
나. 그렇게 / 말(:)하면 // 안 되지.
나'. 빨리 말해.

(6가, 나)에서는 '사람'과 '말하다'가 끊어 말하기 단위의 첫머리에 오기 때문에 원래의 길이를 나타내 주지만, (6가', 나')에서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단음화된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은 단어 차원의 장음이었는데, 말하는 이의 감정이나 표현 의도를 나타내는 장음화 현상도 있다. 이러한 경우에 나타나는 긴소리를 '표현적 장음'이라고 하는데 (7)에 그 몇몇 예가 있다. (7나, 다)의 '넓다, 매우'와 같이 본디 짧은 소리도 표현적 장음화가 가능하다.

(7) 가. 여러분, 부~자 되세요.
나. 넓~디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
다. 매~우 맑은 눈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