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용 표현의 이해]

수식 어구를 동반하는 관용 표현

김한샘 / 국립국어연구원

관용 표현은 두 개 이상의 구성 요소로 이루어진다. 일반적으로 관용 표현의 구성 요소는 고정적이지만 구성 요소가 가변적이어서 여러 단어로 교체할 수 있는 관용 표현도 있다. 특정 수식 어구를 동반해야 관용 표현을 이룰 수 있는 것들이다.

(1) ㄱ. 철수는 목이 말라서 물을 먹었다.
ㄴ. 자네 외국 물을 먹고 오더니 사고 방식이 개방적으로 변했군.
ㄴ'. 자네 *물을 먹고 오더니 사고 방식이 개방적으로 변했군.
ㄷ. 사회 물을 먹어 봐야 세상살이의 어려움을 알게 되는 법이지.
ㄷ'. *물을 먹어 봐야 세상살이의 어려움을 알게 되는 법이지.
(2) ㄱ. 저녁에 온 가족이 모여 앉아 밥을 먹었습니다.
ㄴ. 한 3년 군대 밥을 먹고 나왔더니 공부가 잘 안 되네.
ㄴ'. *한 3년 밥을 먹고 나왔더니 공부가 잘 안 되네.
ㄷ. 사업하는 것이 편하게 회사 밥 먹는 것보다 훨씬 힘들지.
ㄷ'. *사업하는 것이 편하게 밥 먹는 것보다 훨씬 힘들지.
(3) ㄱ. 국에 간이 제대로 배었는지 맛을 봐 줄래?
ㄴ. 몽둥이 맛을 봐야 정신을 차리겠니?
ㄴ'. *맛을 봐야 정신을 차리겠니?
ㄷ. 도회지 맛을 보고 나니 다시 시골로 내려가기가 싫었다.
ㄷ'. *맛을 보고 나니 다시 시골로 내려가기가 싫었다.

(1~3)은 각각 '~ 물을 먹다', '~ 밥을 먹다', '~ 맛을 보다'의 예이다. (1~3)의 ㄱ처럼 세 가지 표현 모두 직설적인 의미로 쓰일 수 있다. 이들이 관용 표현으로 쓰이려면 (1~3) ㄴ, ㄷ의 예처럼 반드시 구성 요소를 수식하는 말이 앞에 와야 한다. (1)의 '~ 물을 먹다'는 '~의 문화를 경험하다'의 의미이다. '물을 먹다'의 앞에 '외국', '사회', '바깥', '학교' 등이 와서 어떤 사회의 문화를 경험한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나타낸다. (2)의 '~ 밥을 먹다'는 '~에서 지내다/일하다'라는 뜻이다. '~'의 자리에는 '군대', '회사', '공장' 등이 올 수 있다. (3)의 '~ 맛을 보다'는 '~을 직접 경험하다'의 의미를 나타낸다. '맛을 보다'는 (3ㄴ~ㄷ)의 '몽둥이', '도회지'와 같이 명사의 수식을 받을 수도 있지만 '뜨거운 맛을 보다', '따끔한 맛을 보다'처럼 용언 관형형의 수식을 받기도 한다. 이때 '뜨거운 맛', '따끔한 맛'은 호된 고통이나 어려움을 뜻한다.

(4) ㄱ. 영희는 보조 의자에 다리를 걸치고 소파에 앉아 있었다.
ㄴ. 신문사에 다리를 걸치고 있으니까 정보는 빠른 편이야.
ㄷ. 철수는 과 후배도 사귀고 동아리 친구도 사귀고, 두 다리 걸치고 있어.
ㄹ. 지영이는 이 모임 저 모임 해서 아마 서너 다리 걸치고 있을 거야.
(5) ㄱ. 군인들이 다리를 건너서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ㄴ. 소문이란 게 다리를 건너오면서 부풀려지기 마련이다.
ㄷ. 박 과장을 통해 한 다리 건너서 서류를 전해 받았다.
ㄹ. 두세 다리 건너서 들은 정보니까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어.

(4~5)는 주로 수 관형사의 수식을 받는 관용 표현의 예이다. (4), (5) 모두 ㄴ의 예처럼 수식 어구 없이 쓰일 수도 있지만 주로 (ㄷ~ㄹ)과 같이 수식 어구를 동반한다. '다리를 걸치다'는 '이익을 보려고 관계를 가지다'라는 뜻이며, '다리를 건너다'는 '말이나 물건 따위가 어떤 사람을 거쳐 다른 사람에게 전해지다'의 의미를 나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