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현장에서]

제목부터 우리말로

손범규(孫範奎) / SBS 아나운서

"직장인 김 모씨는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텔레비전을 켠다. '모닝와이드'에서 경제와 스포츠 소식을 살펴보고 '뉴스투데이'에서 지난 밤 지구촌 소식을 확인한다.
    아침을 먹으면서 신문은 '매거진X'와 '디지털 00'을 읽는다."

현재 방송되는 프로그램 제목과 신문의 쪽 제목을 간단히 살펴봤다. 언론에서는 항상 우리말의 외래어 오염이 심각하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오염이 가장 심한 곳은 언론이다.
    필자가 일하고 있는 SBS의 프로그램을 살펴보자. 현재 SBS에서 방송되는 프로그램은 79개이다. 이중에서 제목에 외래어가 들어간 프로그램은 38개이니 절반 정도의 프로그램이 외래어를 사용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제목이 외래어만으로 된 프로그램이다.

"모닝 와이드, 헬로우 퀴즈 짱, 드라마 스페셜, 맨투맨, 헤이헤이헤이, 스포츠와이드, 뷰티풀 선데이, 사이언스 파크, 세븐데이즈"

이런 프로그램은 모두 15개인데 굳이 외래어를 사용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프로그램의 성격을 잘 표현해 주기 위해서도 아니고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함도 아니다. 임태섭 광운대학교 교수는 자신의 저서에서 언론사의 종사자들이 외래어를 사용하는 이유를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많이 쓰는 말이라서, 의미 전달에 효율적이니까, 외래어를 더 좋아하는 사람들 때문에'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우리말 제목을 사용하지 않는 가장 대표적인 이유는 우리말 제목을 사용하면 '촌스러워보인다'는 것이 방송사 제작진의 생각 때문이다.
    물론 필자가 진행했던 프로그램도 외래어 제목이 많다.

'리얼코리아, 토요 X 파일, 손범규의 스포츠 연예, 스포츠 브리핑, 스포츠 와이드, 열린TV 미디어 바로보기'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마다 아쉽다는 생각을 하지만 이미 결정된 프로그램의 제목을 바꾸기는 무척 힘들다. 사전에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제목을 결정할 때 우리말 제목을 적극 추천해야만 가능한 일인데, 변명 같지만 현재의 제작 체계에서는 쉽지 않다.
    비슷한 성격의 프로그램에서도 제목은 다르게 나타난다.

가) 영화특급-씨네클럽, 무비월드
나) 그것이 알고 싶다, 순간 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 그곳에 가면-헤이헤이헤이, 뷰티풀 선 데이

영화를 다루는 프로그램이지만 가)의 예처럼 우리말 제목과 외래어 제목으로 나뉜다. '씨네'나 '무비'보다는 '영화'란 단어가 더 쉽게 빨리 프로그램의 성격을 말해 주지만 '클럽' '월드' 라는 단어까지 결합시켜 이해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나)는 교양이나 오락 프로그램의 제목이다. 우리말 제목의 프로그램은 모두 오랫동안 SBS를 대표하는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다. 프로그램의 내용이나 성격 못지 않게 제목에서 주는 인상이 강한 프로그램들이다. 반면에 외래어 제목의 프로그램들은 어떤 프로그램일지 쉽게 알 수 없다. 이제 언론이 외래어 사용 핑계를 대중에게 돌려서는 안 되겠다. 언론의 표현 양식이 '공중의 관용어'가 될 만큼 방송과 신문이 우리말에 끼치는 영향은 직접적이다. 그리고 좋은 영향력은 방송과 신문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우리말에 대한 애정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