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 감상]

윤동주의 시 '또 다른 고향'

김옥순(金玉順) / 국립국어연구원
故鄕(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내 白骨(백골)이 따라와 한 방에 누웠다.// 어둔 房(방)은 宇宙(우주)로 通하(통)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어둠 속에 곱게 風化作 用(풍화작용)하는/ 백골을 들여다보며/ 눈물 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白骨(백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魂(혼)이 우는 것이냐// 志操(지조)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白骨(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 ('또 다른 고향',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41. 9.)

윤동주(1917-1945)의 시 '또 다른 고향'은 고향에 대한 이상적인 기대와 현실적인 거리감이 극단적으로 대비된 작품이다. 흔히 고향이라면 세상의 풍파로부터 나를 보호해 주며 지친 몸과 마음을 푸근히 쉴 수 있게 하는 장소이지만 여기서 그러한 기대는 '백골'이 끼어들면서 여지없이 무너진다. 왜 하필 백골일까? 이 시에는 '백골'뿐 아니라 '아름다운 혼', 좀 더 확대하면 '지조 높은 개'에 이르기까지 '나'를 나타내는 심리적 상징물로 가득하다. 모두 화자의 자아(ego)의 상징물로 볼 수 있다. '자아'란 정신 분석학에서는 본능(id), 초자아(super ego)와 함께 성격을 구성하는 한 요소로, 현실 원리에 따라 본능의 원초적 욕망과 초자아의 양심을 조정하는 기능이다. 이 시에서 '나'는 자아를, '백골'은 죽으려는 본능을, '아름다운 혼'은 초자아를 대변한다고도 볼 수 있다. 왜 백골이 본능을 대변하냐고 묻는다면 사람에게는 살려는 본능도 강하지만 죽으려는 본능도 강하다고 말할 수 있다.
    유독 화자를 죽음의 본능 쪽으로 몰아간 장소가 왜 고향일까? 화자가 타향에서 돌아와 지친 몸을 눕히려는 순간, 어쩌자고 백골이 같이 눕는 그런 끔찍한 사태가 벌어졌을까? 비극적인 자기인식이 아닐 수 없다. 사실 고향에 대한 이상적인 기대가 크면 클수록 오히려 더 실망이 클 수 있다. 하지만 이 시에서는 고향에 대한 실망보다 오히려 '지조 높은 개'라는 말이나 이 시집의 제목을 1940년대의 시대적 어둠을 나타내기 위하여 '병원'으로 지으려 했다는 뒷얘기 등 시대적 상황과 관련 지어 생각할 수 있다.
    사실 화자가 고향 땅 집안에서 쉬고 있을 때 어둠 속에 출현하는 우주의 바람은 대단히 멋진 상상력이다. 자연 현상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다만 너무나 무심하고도 부조리하게 제멋대로 나타나는 자연의 위력에 인간이 아무런 방어 능력도 없이 당하게 된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해마다 한반도에 몰려오는 여름 태풍을 그 예로 생각하면 잘 이해된다. 즉 백골을 순식간에 먼지로 날려버리는 바람의 위력은 화자가 감당하기에 너무 버겁다. 결국 나의 분신인 백골 편에 서면 나는 형체도 없이 우주 속에서 먼지로 사라질 것이다.
    이런 한계 상황에 부딪혔을 때 내 의식의 저 밑바닥 (집단 무의식의 일종으로 보임)에서 나를 구원하려 지조 높은 개가 등장한다. 그 개의 도움으로 나는 백골 몰래 '쫓기우는 사람'처럼 도망치듯 고향을 떠나게 된다. 이러한 '백골로 상징되는 나'가 보여주는 하강적 이미지와 '지조 높은 개로 상징되는 나'가 나타내는 상승적 이미지가 서로 공통점을 지닌 반어적 비유 관계를 보여준다.

하강적(-) 이미지   공통점   상승적(+) 이미지
백골 ------------ 자아의 상징물 ------------ 지조 높은 개
어둠 속에 눕는다 ------------ 어둠의 공간 ------------ 어둠을 짖는다
바람에 분해된다 ------------ 바람의 공격 ------------ 바람에 저항한다
눈물 짓는다(체념) ------------ 방어력 ------------ 반항한다(짖는 행위)
바람 소리 ------------ 소리 ------------ 개 짖는 소리

심리학적으로 해석해 볼 때, 화자를 키운 고향은 과거의 화자를 백골로 사라지게 하는 '성장 이전의 공간' 또는 '소멸의 공간'이지만 또 다른 고향은 '지조 높은 개'라는 영혼의 안내자를 통해서 화자가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살게 하는 '성숙의 공간'이라고 볼 수 있다. 시대적 상징으로 해석하면 일제의 강점으로 억눌린 고향의 정치적 상황 속에서 질식하여 백골로 화하는 조선인들과 지조 높은 애국지사들의 항거를 나타내는 정치적 상징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이 시에는 이렇게 자아를 죽게 하는 공간 대 자아를 살리는 공간, 어둠 대 빛, 미성숙한 공간 대 성숙한 공간의 대립 체계가 고향의 이미지를 통해서 선명하게 표현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