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 특집]

문화 유산으로서의 국어

남기심(南基心) / 국립국어연구원장

I. 각 언어는 여러 사회의 서로 다른 문화와 서로 다른 사고 방식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언어마다 다른 어휘 체계와 다른 표현 방식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언어는 그 사회의 고유한 문화적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문자가 문화유산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쉽게 수긍을 하면서도 말이 문화적 유산이라는 데 대해서는 아무도 주의를 하지 않는다. 새로운 문물제도가 생겨나면 그에 따라서 그것을 표현하는 말도 생겨나고, 그러한 문물제도가 시간의 흐름과 함께 변하면 그것들을 표현하던 말도 변화를 입거나 더는 쓰이지 않게 되기도 하지만 이들은 다양한 생활 풍습, 삶의 모습 등 과거의 문화적 양상을 넓게 그 속에 담아 가지고 그 때의 모습을 보여 준다. 이러한 의미에서 과거에 쓰던, 또는 과거로부터 물려받아 쓰고 있는 말은 그대로 문화유산이요, 무형의 문화재라 할 수 있다. 과거의 언어는 우리의 역사, 우리의 생활, 우리의 문화를 보여 주는 역사적 유물이라는 점에서 고고학적 유물과 더불어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

Ⅱ. 근래 우리말이 겪고 있는 변화는 전례 없이 그 폭이 크다. 장단음의 구분이 없어지고, 억양이 크게 달라지고 있으며, 존대법이 과거의 모습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변하는 등 일반적으로 변화의 속도가 느린 말소리나 문법 분야에 있어서도 많은 변화를 겪고 있는 실정이다. 어휘 체계에 있어서의 변화는 이루 지적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불과 몇 십 년 사이에 젊은이들이 개화기의 인쇄물을 읽지 못할 정도로 어휘가 소실되기도 하고, 늘어만 가는 외래어의 유입,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새말로 인해 세대 간의 대화가 어려워질 만큼 상황이 변하기도 하였다. 그러면 이렇게 소실되어 가는 말들을 그냥 버려 둘 것이며, 말소리가 달라져 가는 모습을 그냥 보고만 있을 것인가? 오늘과 같은 표준어의 고른 보급은 해방 후 지금까지 반세기 동안의 힘든 노력의 결실로서 환영할 만한 일이거니와, 그에 비례하여 후대에 전수되지 않고 빠르게 사라져 가기만 하는 많은 양의 방언은 그대로 방치해 버려도 좋은가?
    말이 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막아지지도 않고 반드시 막아야 할 까닭도 없다. 다만, 급격한 언어의 변화는 언어 규범의 파괴를 가져와 혼란을 초래할 위험이 있어 완급을 조절하는 등 어느 정도의 제약을 가할 필요는 있다. 그러나 과거의 언어는 우리의 옛 모습을 보여 주는 역사적 유물이기 때문에 언어 변화의 궤도는 끊임없이 추적하고 그 자료들을 보존해야 할 절대적인 필요가 있다. 언어가 과연 귀중한 문화유산이고, 소중한 문화재라면 소실되어 가고 있는 말들을 수집 보존하고, 더는 잃지 않도록 보호할 방책을 시급히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

Ⅲ. 우리말에 장구한 우리의 역사적 경험이 담겨 있고, 민족의 얼이 스며 있는 것이라면 국어 자료는 단순한 언어 자료로서가 아닌 문화재 차원에서의 수집과 보존이 이루어져야 한다. 문헌 자료는 오래 된 것일수록 깊숙한 곳에 있어서 쉽게 접근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자료들은 자발적인 제보가 없이는 그 존재를 알기가 어렵다. 조사자의 손이 다 미치기 어려운 여러 지방의 토박이말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까지도 자기 고향을 멀리 떠나본 적이 없는 토박이들이 지방에 꽤 많이 있었지마는 지금은 사방으로 길이 뚫리고, 쉽게 차를 이용할 수가 있어서 외부와의 접촉 기회가 많은 까닭에 토박이말이 오염되어 있거나, 주거 환경이 바뀌고, 농사가 기계화하는 등 의식주 생활 방식의 변화로 인하여 많은 어휘가 큰 폭으로 사라져 가고 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의 능동적인 제보와 작업에 의하지 않고는 완전한 채집이 불가능하다. 앞으로 더 많은 토박이말들을 잃기 전에 빨리 이들을 녹음하여 보존해야 한다. 전 국민의 참여가 필요한 것이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며, 이제 이러한 국어 운동을 문화 운동의 일환으로서, 구체적인 실행 계획, 실천적인 강령을 만들어 전국적으로 벌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운동은 비단 국어 자료의 수집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국민의 능동적인 참여를 유도함으로써 국민들의 국어에 대한 자각, 국어에 대한 반성의 계기가 되는 효과를 거둘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문화적 위기에 처해 있다. 필요에 의한 외래 문화의 유입은 어느 때나 있을 수 있는 것이지만 그것은 자기의 필요에 따라 자기 문화에 맞추어 재창조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와 반대로 직수입된 외래 문화에 오히려 자신을 맞춘다. 요즘 세계는 문화적으로 급속히 획일화되어 가고 있다. 세계 어느 곳에서나 동일한 노래를 듣고, 똑같은 옷을 입으며, 똑같은 자동차 문화를 가지고 있다. 서양의 어느 한 도시에서 시작된 유행이 잠시간에 전 세계로 퍼진다. 그래서 영어의 국내 공용어화 주장이 제기될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인터넷의 세계적인 보급은 문화적 획일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사라져 가는 우리 문화적 유산, 우리의 언어를 지키고 보존해야 하는 일이 이래서 시급히 요청되는 것이며,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국어 운동이 우리 문화에 대한 새로운 자각 운동으로 크게 번져 나가야 할 것이라는 주장을 하게 되는 것이다.

Ⅳ. 그런데 토박이말, 방언을 포함한 국어 자료의 수집이 남이나 북의 어느 한 편만의 것이어서는 반쪽의 것밖에 되지 않는다. 남에서 사라진 말의 흔적을 북에서 찾을 수가 있을 것이고, 반대로 북에서 없어진 말을 남에서 확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남과 북의 협력과 공동 작업이 이래서 요청되는 것이다. 다만 남과 북의 말만이 아니라 세계 각처의 동포들의 언어, 특히 이주의 역사가 깊은 중국, 구 소련 지역 동포가 보존하고 있는 우리말도 마찬가지이다.
    언어는 정보 전달, 정보 교환의 도구이면서, 동시에 정서적 표현의 수단이라는 점에서 자기의 지역적 생활 환경 속에서, 일상적 생활 감정이 배어 있는 언어를 잃는 것은 정서적 생활을 잃는 것이며, 박제된 인간이 되고 마는 것과 같다. 위에서 제안한 것과 같은 국어 운동은 곧 자기 언어에 대한 자각을 일깨우는 계기가 될 것이고, 그러한 자각은 우리 문화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질 수가 있다. 개화기 이후로 지금까지 서양 문화의 도입과, 저쪽 문화의 학습에 몰두하면서 우리 것은 대부분 청산해야 할 대상으로 비하해 왔고 그것은 영어의 공용어화 주장의 또 하나의 동기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너무 일상적이어서 의식하지 못했던 우리말, 나의 지역어에 대한 자각은 우리 것에 대한 자존심을 회복하고 내 것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게 되어 더 큰 문화 운동으로 승화, 발전할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Ⅴ. 국어는 우리 민족 공동의 오랜 역사적 문화유산이요, 무형 문화재라는 인식의 전환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옛 우리말, 오늘의 지역 방언을 잃는다는 것은 옛 사람들의 생활의 지혜를 잃는 것이요, 문화적 다양성을 외면하는 것이다. 풍요로운 언어가 삶의 내용을 풍성하게 해 준다고 믿는 것은 잘못이 아닐 것이다.
    남과 북 그리고 중국을 비롯한 해외 동포들과의 협력이 절실히 요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