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현장에서]

남과 북의 방송 언어

손범규(孫範奎) / SBS 아나운서

지구촌 젊은이들의 축제, 2003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가 성공적으로 끝났다. 사상 최다 규모로 174개국에서 7천 명이 넘는 선수와 임원이 참가했던 이번 대회는, 특히 지난 부산 아시안게임과 마찬가지로 북한의 선수단과 응원단이 참가해 많은 화제를 모았다. 대회가 열리기 전에 있었던 보수 단체 집회에서의 인공기 소각 문제나 대회 기간 중의 북한 기자단과 우익 단체의 충돌로 잠시 험한 분위기가 있었지만, 개폐회식에서 남북 선수단이 한반도기를 앞세운 채 손을 맞잡고 동시에 입장하는 장면은 무척 감동적이었다.
    방송사들도 무척 바빴다. 지금까지 이어져 온 '증오와 갈등의 길'에서 벗어나 '사랑과 화해의 길'을 대구에서 열자는 개회식의 이념을 지구촌 가족들에게 전하기 위해서였다. 방송 3사는 3백 명이 넘는 중계, 취재 인원과 10여 대의 중계차를 동원해 방송사별로 하루 세 시간 이상 중계 방송을 했다. 그리고 대구에서는 북한 '조선중앙텔레비죤' 방송을 직접 시청할 수 있었다. 북한 취재팀 부스에 이 방송 위성 수신 장치가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방송 수신은 공중파가 대구까지 도달하지 않아 위성을 통해 이루어졌고 일반인들은 시청할 수 없었지만 필자는 중계팀의 일원으로 북한 여자 축구 경기나 몇몇 종목의 중계 방송을 볼 수 있었다. 필자가 확인한 남북한 중계 방송 언어의 차이점 몇 가지를 어휘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1) ㄱ) 조직적인, 협동, 세트플레이 - 꾸밈
ㄴ) 점수 차이가 났지만 - 떨어졌지만
ㄷ) 여유 있는 - 풀린

(1)의 예는 표현이 다른 말의 예로서, ㄱ)에서 '뭔가를 만들어내는 서로간의 노력'은 '꾸밈'으로 사용했다.(예: 선수간의 꾸밈이 좋았습니다.) 또 한자어 '차이' 대신에 '떨어지다'를 사용했고,(예: 그동안의 성적에서 떨어지지만) '여유가 있는, 넉넉한'은 '풀린'이란 표현을 썼다.(예: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완전히 풀린 상태에서) 북한 방송의 경우 김일성과 김정일, 당의 정책이나 사상에 관한 내용일 때는 한자어가 많이 사용되지만 일반적인 내용이나 스포츠 중계 방송에서는 한자어를 고유어로 풀어쓰는 경우가 많다.

(2) ㄱ) 유니폼 - 운동복
ㄴ) 패스 - 연락
ㄷ) 프리킥 - 벌차기
ㄹ) 코너킥 -모서리 뽈 차기

(2)의 예는 북한의 외래어 사용에 관한 것이다. 북한은 한자어와 외래어를 일정한 범위에서 국한시켜 놓고 그 사용을 제한하며 많은 외래어를 고유어나 쉬운 한자어로 풀이해서 사용한다. 이런 강력한 외래어 정책은 단순한 언어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이념의 문제가 바탕을 이룬다. 따라서 자연스러운 말의 법칙과 상충되어 남북한 언어의 이질화를 말할 때 흔히 거론된다.
    무분별하게 외래어를 남용하는 남한의 방송 언어와 고집스럽게 풀어쓰기를 고집하는 북한의 방송 언어, 정치적 통일에 앞서 먼저 언어의 통일이 시급한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