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용 표현의 이해]

사람의 감정과 관련된 관용 표현(3)

김한샘 / 국립국어연구원

기쁘고 즐거운 상황뿐만 아니라 화가 나거나 슬픈 상황도 관용 표현을 사용하면 더 실감 나게 나타낼 수 있다. 언짢은 일이 생겨서 심하게 화가 날 때를 생각해 보자. 몸에 열이 나고, 소화가 안 되고, 혈압이 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마음과 몸이 서로 통하기 때문이다.

(1) ㄱ. 아들 녀석이 하도 말을 안 들어서 요새 속이 뒤집힙니다.
ㄴ. 아이들이 너무 떠드니까 열이 올라서 매를 들었던 겁니다.
ㄷ. 논쟁 끝에 모두들 열이 나서 싸움이 붙었다.
ㄹ. 자꾸 아버지 혈압 오르시게 해 봤자 너한테 좋을 거 없어.
ㅁ. 어머니가 나만 새 옷을 사 주셔서 동생이 뿔이 났습니다.
ㅂ. 영희 때문에 철수랑 사이가 안 좋아진 걸 생각하면 지금도 이가 갈려.
(2) ㄱ. 나한테 열을 낸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니까 같이 답을 찾아보자.
ㄴ. 그렇게 사람들 앞에서 혈압을 높이시다가는 인심만 잃습니다.
(3) ㄱ. 지금까지 철수가 한 말이 모두 거짓임이 드러나자 영희는 입이 썼다.
ㄴ. 공들여 온 수사가 수포로 돌아가자 최 형사는 입맛이 썼다.

(1)의 ㄱ~ㅂ은 모두 '화나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ㄱ~ㄹ의 '속이 뒤집히다', '열이 오르다', '열이 나다', '혈압이 오르다'는 신체 변화에 빗대어 화가 난 상태를 표현한 것이다. ㅁ의 '뿔이 나다'는 정도가 약해서 '삐치다'로 바꾸어 말할 수 있다. 반면 ㅂ의 '이가 갈리다'는 화가 나다 못해 분한 경우에 쓴다. (2ㄱ~ㄴ)은 모두 '화내다'로 바꾸어 쓸 수 있다. ㄱ의 '나', ㄴ의 '사람들'처럼 화난 감정을 전달할 대상이 있을 때 '열을 내다'나 '혈압을 높이다'가 쓰인다. (3)의 '입이 쓰다', '입맛이 쓰다' 등은 어떤 일에 대해서 언짢은 감정이 들 때 사용한다. 비슷한 의미의 단어인 '씁쓸하다'로 바꾸어 쓸 수 있다.
    슬픈 감정이 어느 정도 이상이 되면 눈물을 흘리게 된다. 조용히 눈물을 흘릴 수도 있지만 슬픔의 정도가 크면 신체의 동작을 동반하게 된다.

(4) ㄱ. 영희는 남편에게 안겨서 어깨를 들먹였다.
ㄴ. 한참 어깨를 들먹거리던 은미는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
ㄷ. 박 선생은 슬픔을 가누지 못하고 구석에서 코를 훌쩍였다.
ㄹ. 코를 훌쩍거리며 빈소를 지키던 아이들은 어느새 잠이 들었다.
ㅁ. 남겨진 가족들이 목을 놓아 우는 모습이 처량해 보였다.

(4ㄱ~ㄴ)의 '어깨를 들먹이다', '어깨를 들먹거리다'는 감정이 격해서 울 때 어깨가 들렸다 놓였다 하는 모양을 비유하여 '울다'라는 뜻을 나타내게 되었다. 단독으로 쓸 수도 있지만 '어깨를 들먹이며 울다', '어깨를 들먹거리며 울다'와 같이 '울다'와 함께 쓸 수도 있다. (4ㄷ~ㄹ)의 '코를 훌쩍이다', '코를 훌쩍거리다'도 (4ㄱ~ㄴ)과 비슷하다. 눈물을 흘릴 때 같이 흘러나오는 콧물을 자꾸 들이마시면서 우는 모습에서 '울다'라는 의미를 나타내게 되었다. 역시 '울다'와 함께 써서 '코를 훌쩍이며 울다', '코를 훌쩍거리며 울다' 등으로 표현할 수 있다. (4ㅁ)의 '목을 놓다'는 주로 '목을 놓아', '목을 놓고'의 형태로 '울다'와 함께 써서 소리를 실컷 내어 울거나 부르짖음을 나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