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언의 이해]

판소리와 전라도 방언

이태영(李太永) / 전북대학교

판소리는 전라도 해안에서 발생한 무가에서 비롯하여 18세기에는 하층민과 중인들이 그 음악을 즐겼고, 차츰 사대부들이 후원을 하면서 19세기에는 양반들도 즐기는 음악으로 바뀌었다. 이후 판소리는 거의 모든 계층이 즐기는 대중 예술로 성장하게 되었다. 전주 지역에서는 민속놀이에 판소리가 그 중심이 되면서 오늘날까지 대사습 대회가 이어져 오고 있다.
    대한민국을 동서로 나누면 동쪽 남부 지역의 언어는 억양을 가지고 있는 반면, 서쪽 남부 지역의 언어는 음의 장단을 가지고 있다. 장단을 가진 언어는 음악적으로 표현하기가 비교적 쉬운 편이다.
    판소리가 전라도에서 발달하게 된 이유 중의 하나는 전라도 방언의 특징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전라도 방언은 말씨가 부드럽고 입을 적게 벌리고 발음하는 특징이 있다.
    전라도 방언이 10개(또는 9개)의 모음을 가지고 있고, 또 특이한 발음이 없어서 대중들에게 무리가 없이 받아들여지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특징은 부드러움으로 연결되는데 이 부드러움은 해학과도 관련되고 여유로움과도 관련되어서 판소리에서 그러한 느낌이 조화롭게 발현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예를 들면, 모음 '에, 아'는 음악적으로 매우 강한 음인데, 전북 지역에서는 일반적으로 노인들의 경우 '에' 대신 '으'나 '이'로, '아' 대신 '어'로 발음하고 있다. '이' 모음은 전설 고모음으로 가장 앞에서 발음되고, '으' 모음은 중설 고모음이다. '어' 모음은 중설 중고모음으로 중설 저모음인 '아' 모음보다 훨씬 발음하기가 쉽다. 같은 음성 환경에서 '으'가 가장 짧게 발음되고, '애, 아'가 가장 길게 발음된다. 고모음인 '이, 우, 으'는 다른 모음들보다 짧게 발음된다. 이처럼 전북 방언에서는 조사에 쓰이는 모음은 대체로 짧게 발음되는 모음이 사용되면서 발음을 짧게 하는 경향이 높다.
    구개 모음화를 보여 주는 '스물-시물, 그을려서-끄실려서, 마을-마실(간다), 가을-가실'과, 'ㅣ모음 역행동화(움라우트)'를 보여 주는 '아비-애비, 고기-괴기, 당기다-댕기다, 속이-쇡이, 깍기다-깩기다' 등의 변화는 발음을 쉽게 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꽃이-꼬시, 밭이-바시, 짚이-지비'의 예에서 보는 바와 같이 무성 마찰음이나 무성 파열음인 'ㅊ, ㅌ, ㅍ, ㅋ' 등이 평음인 'ㅅ, ㄱ, ㅂ'으로 중화되면서 마찰이나 파열이 되지 않고 부드럽게 발음된다. '못해요-모대요, 밥하고-바바고, 숯하고-수다고'의 예처럼 'ㅎ'음이 자음과 결합될 때 유기음으로 실현되지 않는 특징이 있어 비교적 부드러운 발음이 된다.
    '기침-지침, 곁에-졑에, 형-성, 심-힘' 등과 같이 구개음화되는 현상도 남부 방언에서부터 시작되는데 이것 또한 전라도 방언의 부드러움을 표현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것 역시 무성 마찰음이나 파열음이 마찰음 'ㅅ'으로 표기되는 것이다.
    '겁~나게, 점~드락, 포도~시, 굥~장히, 워~너니' 등과 같은 부사에서 보면 어휘에 늘여빼는 장음이 발달한 것도 판소리와 관련된다. '머덜라고리여~, 이거시 머~시다요?' 등의 문장이 보여 주는 장단과 리듬은 판소리의 가락을 형성하는 데 깊이 관련되어 있다.
    전북 방언은 이러한 특징 때문에 말 그 자체에 리듬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흔히 판소리를 한의 노래라고 하는데 판소리는 이러한 언어적 특징 속에 인간의 마음과 관련된 한이 녹아들어 방언적 특징과 예술적 특징이 조화된 음악으로 발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