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용 표현의 이해]

사람의 감정과 관련된 관용 표현(2)

김한샘 / 국립국어연구원

감정과 관련된 관용 표현 중에는 '가슴'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것이 많다. 감정은 어떤 현상이나 일에 대하여 일어나는 마음이다. 마음의 변화가 곧 감정의 변화인 것이다. 가슴이 '배와 목 사이의 앞부분'이나 '심장'뿐만 아니라 '마음이나 생각'을 뜻하기 때문에 '가슴에 닿다', '가슴을 앓다', '가슴을 치다' 등 '가슴'을 포함하는 관용 표현은 사람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 쓰이는 것은 자연스럽다.

(1) ㄱ. 마지막 수업 시간이라 그런지 선생님의 말씀은 내 가슴에 와 닿았다.
ㄴ. 아들 녀석이 키가 커서 이제 머리가 제 아버지 가슴에 닿습니다.
(2) ㄱ. 혼자서 동생들을 돌보는 아이의 사연은 내 가슴을 두드렸다.
ㄴ. 연희는 엉엉 울면서 남편의 가슴을 두드렸다.
(3) ㄱ. 위안부 할머니의 구구절절한 사연은 듣는 이들의 가슴을 적셨다.
ㄴ. 물 마시는데 옆 사람이 치는 바람에 팔과 가슴을 적셨다.
(4) 디제이가 읽어 주는 편지는 청취자들의 가슴을 울렸다.
(5) ㄱ. 드라마는 온 국민의 가슴에 파고들어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ㄴ. 아기는 낯을 가리는지 엄마의 가슴에 파고들었다.
ㄷ. 갑자기 모욕감이 가슴에 파고들어 견딜 수가 없었다.
(6) ㄱ. 목사님의 설교는 신도들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ㄴ. 아내는 울면서 남편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ㄷ. 이유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1~6)ㄱ의 밑줄 친 관용 표현들은 모두 '감동을 일으키다'의 의미이다. 주어 자리에 오는 '말씀', '사연', '편지', '드라마' 등이 모두 감동을 일으키는 원인이다. 감동을 받는 사람은 '내', '신도들의' 등과 같이 '가슴'을 수식하는 말로 표현된다. 이와 달리 '가슴이 뭉클하다'나 '가슴이 찡하다'는 주어 자리에 사람을 나타내는 말이 와서 '감동을 느끼다'의 뜻을 나타낸다. (1~6)의 ㄴ은 각각의 ㄱ에 대응되는 직설적인 표현의 예이고, (5ㄷ, 6ㄷ)의 '가슴(에/을) 파고들다'는 '모욕감', '두려움'과 같은 감정이 생겨난다는 의미이다.

(7) ㄱ. 시험에 떨어진 것을 알고 영수는 가슴이 내려앉았다.
ㄴ. 초인종이 울리자 빚쟁이가 찾아온 것일까 봐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8) ㄱ. 불쌍한 조카들 생각만 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ㄴ. 외국에서 살면서 오랜만에 애국가를 들으면 감격해서 가슴이 미어집니다.
(9) ㄱ. 어린 나이에 담배를 피고 술을 마시는 아이들을 직접 보니 가슴이 아프네요.
ㄴ. 앞으로 3년간 아들과 떨어져 있을 생각을 하니 어머니는 가슴이 찢어졌다.
ㄷ. 친구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이 무너졌다.
ㄹ. 최 박사는 부인을 떠나보내고 지금까지 가슴을 앓으며 살았다.
(10) 할아버지가 남기신 하모니카는 볼 때마다 우리의 가슴을 저몄다.

(1~6)의 관용 표현이 감동이 일어나는 긍정적인 상태를 표현한 것이라면 (7~10)의 관용 표현은 슬픔이나 걱정, 분노 때문에 마음이 아픈 부정적인 상황을 나타낸다. (7)의 '가슴이 내려앉다'는 (7ㄱ)처럼 실망하거나 슬픈 상황에 쓰이기도 하지만 (7ㄴ)과 같이 몹시 놀란 상황을 표현할 때도 쓰인다. '가슴이 미어지다'는 슬퍼서 마음이 아프다는 (8ㄱ)의 뜻 이외에 (8ㄴ)의 예와 같은 '감격이나 흥분이 마음속에서 넘치다'의 의미로도 쓰인다. (7~9)의 관용 표현들이 사람을 주어로 하여 감정을 표현하는 반면, (10)의 '가슴을 저미다' 감정을 느끼게 하는 원인이 되는 것을 주어로 삼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