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의 이해]

사전에 실린 동음이의어

이운영(李云暎) / 국립국어연구원

글을 읽다 궁금한 단어가 나와서 사전을 펼쳐 보면, 똑같은 단어가 여러 개 나와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신문에서 골프 관련 기사를 읽다가 '보기'라는 단어를 보고 이를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면 모두 11개의 '보기'가 나온다. 즉 '보기¹', '보기²', ......, '보기¹°', '보기¹¹'과 같이 죽 나와 있는 '보기'를 접하게 되며, 찾는 사람은 이 중에서 원하는 단어가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이처럼 형태는 같으나 의미가 달라서 사전에 독립된 표제어로 등재한 단어를 동음이의어, 혹은 동형어라고 한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이와 같은 동음이의어가 41,407개 실려 있다. 이 41,407개의 단어는 형태가 같은 것들이 두 번 이상 사전에 나타났다는 것이고, 이렇게 어깨번호를 달리하여 여러 번 실린 동음이의어들을 모두 합하면 124,254개로, 전체 표제어의 22.4%에 이름을 알 수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린 동음이의어들을 어깨번호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어깨번호가 '2'까지 있는 것, 즉 두 개의 동음이의어가 실린 것이 24,925개로 전체 동음이의어의 반을 넘게 차지한다. 그리고 쉽게 예측할 수 있는 대로 어깨번호의 수치가 커질수록 그에 해당하는 표제어 수는 줄어든다. 예를 들어 어깨번호가 10까지 있는 단어는 118개이고, 어깨번호가 22까지 있는 단어는 14개에 불과하다. 현재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린 단어 중에서 가장 많은 동음이의어를 지닌 것은 '장'으로, 무려 46개가 실려 있다. 이 외에도 '사', '기', '정', '이' 등과 같은 한 음절 형태가 동음이의어가 많다.
    동음이의어는 원어는 다른데 철자는 동일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 위에서 예로 보인 '보기'의 경우, 두 개만 원어가 없고 아홉 개에는 모두 원어가 제시되어 있다. 그리고 원어가 제시된 아홉 개의 표제어는 그 제시된 원어가 모두 다름을 알 수 있다. 이 중에서 여덟 개는 한자가 원어인데 이때 쓰인 한자가 모두 다르고, 마지막에 제시된 '보기11'에는 영어 'boggy'가 원어로 제시되어 있다. 이 마지막 보기가 앞서 말한 골프 전문 용어로서의 '보기'이다. 이와 같이 원어가 다른 경우는 대개 의미도 다르기 때문에 이러한 단어들은 사전에 별개의 표제어로 등재한다. 즉 우연히 철자만 같을 뿐이지 전혀 다른 단어라고 보기 때문이다. 원어가 아예 없는 고유어의 경우도 동음이의어가 있을 수 있다. '보기1'과 '보기2'는 모두 원어가 없기 때문에 원어를 가지고 두 단어를 구별할 수는 없다. 이때에는 어원 내지 의미의 연관성을 따지게 된다. '보기1'은 '본보기'라는 의미의 표준어인 반면 '보기2'는 그릇의 일종인 '보시기'의 방언형으로 의미적으로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 따라서 이 두 개는 완전히 별개의 단어라고 보아 각각을 표제어로 등재한 것이다.
    원어가 다르다고 해서 모두 동음이의어로 처리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한자어의 경우 하나의 표제어에 여러 개의 한자 원어가 제시된 경우가 있다. 한반도에 존재했던 나라의 하나인 '가야'에는 '伽倻/伽耶/加耶'와 같이 모두 세 개의 원어가 제시되어 있다. 그러나 이를 원어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각각 나누어 표제어로 등재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이들은 모두 동일한 나라를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를 나누어 제시한다면 세 표제어의 뜻풀이는 동일할 것이고, 이는 지면만 낭비하는 셈이 된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에는 표제어를 나누지 않고, 원어에 가능한 여러 한자를 복수로 제시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