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 감상]

김수영의 瀑布(폭포)

김옥순(金玉順) / 국립국어연구원
瀑布(폭포)는 곧은 絶壁(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規定(규정)할 수 없는 물결이/무엇을 向(향)하여 떨어진다는 意味(의미)도 없이/ 季節(계절)과 晝夜(주야)를 가리지 않고/ 高邁(고매)한 精神(정신)처럼 쉴사이 없이 떨어진다// 金盞花(금잔화)도 人家(인가)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瀑布(폭포)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곧은 소리는 소리이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醉(취)할 순간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懶惰(나타)와 安定(안정)을 뒤집어 놓은 듯이/ 높이도 幅(폭)도 없이/ 떨어진다 (김수영, '瀑布(폭포)', "거대한 뿌리", 민음사, 1975)

일반적으로 서구에서 '분수'를 풍경의 일부로 애호해 왔던 것과 달리 폭포는 동양의 정원과 풍경을 대표하는 대상으로 사랑받아 왔다. 폭포가 전통적인 산수화 소재인 십장생(十長生, 오래도록 살고 죽지 않는다는 열 가지. 해, 산, 물, 돌, 구름, 소나무, 불로초, 거북, 학, 사슴) 중의 한 소재임은 잘 알려졌다. 김수영(1921~1968)의 시 "폭포"(1957)에서 나타난 폭포 이미지는 전통적인 동양 사회의 정신적인 고매함을 나타내는 이미지와 일맥상통한다.
    고매한 정신의 속성을 드러내는 핵심어는 '떨어지다'이다. 떨어짐을 두려워하지 않는 존재가 물 말고 또 있으랴. 젊은 기운이 떨어지고, 지위가 떨어지고, 명성이 떨어지고, 세상의 모든 '떨어지는' 존재는 소멸의 위험 부담을 안고 있다. 세상의 이치가 일단 올라가면 떨어지게 마련인 것을 물의 이미지가 잘 보여주고 있다. 그 중에서도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지는' 폭포는 고매한 정신을 지녔다고 밖에 볼 수 없다.

A 고매한 정신   폭포 B
쉽게 정의할 수 없는 고매한 정신 ----------------------- 형태가 없는 물의 무정형(無定形)
의식적인 목적이 없다 ----------------------- 무목적성
의식적인 지향성이 없다 ----------------------- 무지향성
끊임없이 정진 ----------------------- 나타와 안정을 뒤집어 놓는 운동성

그러나 3, 4연에 등장하는 폭포의 이미지는 산수화에 흔히 등장하는 현실을 떠난 고매한 은자의 모습과는 약간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시에서의 폭포는 자신의 득도(得道) 내지 장생불사(長生不死)를 위하여 자연에 은거(隱居)하는 고고한 존재가 아니라 다소 촌스러운 금잔화나 소음과 공해 물질을 발생하는 인가와 더불어 사는 존재임을 주목할 수 있다. 더불어 산다는 것은 사회의식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폭포는 떨어질 때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폭포의 비유는 업무를 잘못 수행했거나 뇌물을 먹고 잘못해서 자리에서 떨어지는 그런 이미지가 아니라, 불의(不義)를 못 참고 행동하다 떨어지는 '곧은 존재'임을 암시한다. 그런데 누가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지면 곁에 있던 사람들도 경탄하며 같이 떨어지는 사회적 효과가 발생한다. 즉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이다. 개인의 지향성이나 목적성이 아니라 다수 집단의 지향성과 목적을 위하여 자신을 버리는 집단 행동이 이루어진다. 고매한 정신의 떨어짐은 세계를 이해하고 관찰하는 한 정신의 태도로서 집단적인 시민운동을 촉발한다. 그런 점에서 이 시는 4․19 혁명의 시민 정신과 그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고, 그와 동시에 어떠한 형태나 의미로도 규정할 수 없는 그 시대마다의 '자유로운 비판적 지성(知性)'을 표상한다고도 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 5연에 오면 2연의 '규정할 수 없는 물결'은 '물방울'로 세분화되면서 번개에 비유된다. 폭포의 큰 흐름인 물결이 완만하게 움직인다면 그 일부분인 물방울은 그 커다란 흐름을 유지하기 위하여 안에서 번개처럼 쉬지 않고 빠르게 떨어져야 한다. 물방울 하나하나의 내부적인 노력은 잠시도 의식을 잃지 않고 맑은 정신을 유지하는 지성인의 모습을 띤다. 어떤 순간에도 타협이나 게으름을 용납하지 않고, 어떤 위치나 조건에도 머물러 자족하지 않는 안정을 뒤집어 놓는 존재로 나타나는 핵심적 주체가 떨어지는 물방울이다. '떨어지는' 물방울이 모여 '떨어지는' 물결을 이루면 폭포가 되듯이 타협하지 않고 쉽게 썩지 않는 지성이 모이면 시대를 이끌어갈 흐름인 시민 정신을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