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래어의 이해]

우리말에서 쓰이는 외래어

이운영(李云暎) / 국립국어연구원

국어사전에서 단어를 찾다 보면 순수한 고유어나 한자어 외에도, 외국어에서 들어온 외래어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실제로 국립국어연구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순수한 외래어만 25,000개 정도가 실려 있고, '고속버스'처럼 일부가 외래어인 것까지 합하면 모두 40,000개에 가까운 외래어가 실려 있다. 여기에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거의 매일 사용하는 '버스', '텔레비전', '컴퓨터', '가스레인지', '볼펜', '카드' 등이 포함된다. 그런데 이러한 외래어가 영어에서 온 것이 압도적으로 많다 보니 흔히 외래어 하면 영어에서 온 말만 떠올리기 쉬운데,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외래어 중에는 영어 이외의 다른 언어에서 온 말들도 상당수 있다.
    인명이나 지명과 같은 고유 명사를 제외하고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린 외래어를 살펴보면, 영어가 아닌 다른 언어에서 온 외래어가 4,000여 개 나타난다. 이 외래어들은 모두 30개의 서로 다른 언어에서 온 말들이다. 여기에는 독일어, 프랑스 어, 이탈리아 어, 그리스 어, 일본어, 라틴 어, 러시아 어 등에서 온 말이 다수 포함되어 있고, 이 외에도 네덜란드 어, 에스파냐 어, 산스크리트 어, 아랍 어, 중국어, 포르투갈 어, 히브리 어 등에서 온 말도 나타난다.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위에 나열한 순서대로 외래어가 많이 나타난다.
    위의 빈도순을 보면, 영어를 제외하고는 독일어에서 온 단어가 가장 많이 나타난다. 독일어에서 온 단어는 모두 1,200개가 넘어서 상대적으로 매우 높은 빈도를 보인다. 언뜻 생각하기에는 지리적으로 가까운 일본이나 문화가 발달했다고 하는 프랑스에서 온 것이 더 많을 것 같은데, 실제로는 독일어에서 온 말이 가장 많다. 그 이유는 물리나 화학, 의학과 같은 전문 분야에서 쓰이는 단어 중에 독일어에서 온 것이 매우 많기 때문이다. '히스테리', '노이로제', '알레르기', '깁스' 같은 단어가 모두 독일어에서 온 단어이다.
    프랑스 어에서 온 단어는 750여 개로 독일어에서 온 단어 다음으로 많고, 여러 분야에서 고루 나타난다. '리무진', '망토', '쿠데타', '콩쿠르', '크레용', '데뷔', '뷔페' 등이 모두 프랑스 어에서 온 말이다. 이탈리아 어에서 온 말은 음악 관련 용어에서 압도적으로 많이 나타난다. '소프라노', '알토' 등의 성악 음역을 나타내는 용어나 '비올라', '첼로' 등 악기 이름, 그리고 '도, 레, 미, 파' 등의 계이름도 모두 이탈리아 어에서 온 말이다.
    그리스 어에서 온 단어 중 많이 사용되는 것은 그리스 어 알파벳 자모 이름이다. 흔히 '처음부터 끝까지'라는 뜻으로 사용하는 '알파에서 오메가까지'의 '알파'와 '오메가'가 모두 그리스 어 자모 이름이고, 방사선의 일종으로 의학 분야에서 사용하는 '감마선', '베타선' 등의 '감마', '베타'도 그러하다. 수학 용어로 많이 쓰이는 '시그마', '람다', '파이'도 여기에 속한다. 이 외에도 '아가페', '에로스', '코스모스' 등도 그리스 어에서 온 단어이다.
    일본어에서 온 외래어는 의외로 빈도순에서 다소 뒤에 나타나는데, 이는 일본어를 원어로 지니는 많은 단어가 외래어라기보다는 외국어로 봐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건설 용어로 많이 사용되는 '간조', '하바' 등이 이러한 예로, 이러한 단어들은 외래어로 보지 않기 때문에 사전에 등재하지 않은 것이며 따라서 이러한 단어는 각각 '품삯', '너비' 등의 고유어로 바꾸어 사용해야 한다. 일본어에서 온 외래어로 사전에 등재된 것에는 일본 고유의 문화를 반영하는 '게이샤', '가라테', '기모노', '스모' 등이 있다.
    이 밖에 '미사', '비루스'는 라틴 어에서, '인텔리겐치아'는 러시아 어에서 온 말이고, '게릴라'는 에스파냐 어에서 온 말이다. 월드컵 축구 경기 이후 관심의 대상이 되었던 네덜란드 어에서 온 말도 78개가 수록되어 있다. 우리가 종종 접하는 '스포이트', '사벨', '메스', '칸델라' 등이 모두 네덜란드 어에서 온 말이다.
    외래어는 흔히 외국의 새로운 문물이나 사상 등과 함께 들어오는 경우가 많고, 따라서 대응하는 우리말이 없기 때문에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말들도 가능하면 고유어로 순화하여 사용하는 것이 좋고, 더구나 대응하는 우리말이 있음에도 굳이 '외국어'를 사용하는 태도는 버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