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 감상]
황지우의 '飛火(비화)하는 불새'

김옥순(金玉順) / 국립국어연구원

나는 그 불 속에서 울부짖었다/살려 달라고/살고 싶다고/한 번만 용서해 달라고/불 속에서 죽지 못하고 나는 울었다// 참을 수 없는 것/무릎 꿇을 수 없는 것/그런 것들을 나는/인정했다/나는 파드득 날개쳤다// 冥府(명부)에 날개를 부딪치며 나를/호명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무너지겠다고/약속했다// 잿더미로 떨어지면서/잿더미 속에서/다시는 살[肉]로 태어나지 말자고/다시는 태어나지 말자고/부서지려는 질그릇으로// 날개를 접으며 나는/새벽 바다를 향해// 날고 싶은 아침 나라로/머리를 눕혔다/日出(일출)을 몇 시간 앞둔 높은 窓(창)을 향해
(황지우, '飛火(비화)하는 불새',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문학과지성사, 1983)

황지우(1952~)의 시 '飛火(비화)하는 불새'에 나타나는 새는 이집트 신화에 나오는 새로 500~600년마다 한 번 스스로 향나무를 쌓아 불을 피워 타 죽고 그 재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고 하는 불사조(phoenix)의 이미지를 띤다. 시인이 유신 반대 시위, 1980년대 광주민주화운동에서 취조, 고문을 당했던 당시의 극한 상황을 타오르는 불속에 뛰어든 불새로 비유함으로써 노화(老化)를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 불을 피워 놓고 그 속에 뛰어들어 다시 젊음을 되찾는 불새의 이야기와 병치(竝置)하고 있다. 시적 화자가 취조와 고문을 당하면서 생과 사의 아슬아슬한 경지까지 갈 때에 사람의 몸과 의식이 얼마나 무너질 수 있는지, 그리고 그 한계상황 속에서 어떻게 저승을 응시하게 되는지를 고통스러운 고문 과정을 통해 보여주고 있고 동시에 불새가 재생을 위해 불 속에 스스로 몸을 던져 날개를 파닥이면서 타 죽고 불가마 속의 질그릇처럼 다시 구워져 태어나는 죽음과 재생의 드라마와 은유적으로 병치하고 있다.

A 불새의 죽음과 재생   화자가 취조 당하는 상태 B
불속 -------------- (고문)
파드득 날개를 치다 -------------- (참을 수 없는 모욕과 고통)
저승에 날개를 부딪히다 -------------- (죽음 같은 고문과 취조)
잿더미로 떨어지다 -------------- (의식을 잃어버린 상태)
날개를 접다 -------------- (훼절, 죽음)
날고 싶은 아침 나라 -------------- 일출을 몇 시간 앞 둔 (취조실의) 높은 창(재생)

1, 3, 5연은 취조실에서 고문에 반응하는 화자의 행동을 묘사하고 2, 4, 6연은 그런 극한 상황에서 느끼는 화자의 자의식이 드러난다. 처음에는 불로 비유된 고문 속에서 살려 달라고 울부짖는다. 그 다음에는 참을 수 없는 모욕과 고통으로 '파드득 날개를 쳤다'로 비유된다. 계속되는 고문과 취조 상태는 저승에다 날개를 부딪치는 것으로, 견디다 못해 의식을 잃어버린 상태는 잿더미로 떨어지는 것으로, 그리고 훼절과 죽음은 날개를 접는 이미지로 나타난다. 여기까지는 불새가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긴박한 상황 묘사이다. 뒤이어서 오는 불새의 재생은 '날고 싶은 아침의 나라'로 암시된다.
    문학비평가 김현의 말처럼 황지우의 초기 시는 그가 매일 보고 듣는 사실들, 그리고 만나서 토론하고 헤어지는 사람들에 대한 시적 보고서이다. 그의 다양한 형식의 보고서들은 삶의 다양성을 그대로 보여 주면서, 그것들을 해석하는 해석자의 세계관을 은연중에 노출시킨다. 4연에서 화자의 의식이 '다시는 살[肉]로 태어나지 말자고/다시는 태어나지 말자고' 다짐하는 구절이 있는데 살아 있는 것이 고통인 극한 상황에서 나오는 절규이다.
    이런 극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일반적으로 나고 죽는 것이 고통이라고 한다. "삼국유사"에 보면 신라 시대에 원효가 사복의 어머니 장사를 지내면서 "나지 말지어다, 그 죽음 괴롭도다, 죽지 말지어다, 그 태어남 괴롭도다"라고 말하니까 사복이 말이 번거롭다고 다그쳤다. 그래서 원효가 다시 '죽는 것도 사는 것도 괴롭도다'로 말을 맺었다는 것처럼 이 시를 읽으면서 생명 있는 존재로 태어나 사는 것이 어려움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