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규(李相揆) / 경북대 교수, 동경대 객원 연구교수
최근 우리 학계에 특수 목적의 사전들이 나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동의어․유의어 사전은 동의어 또는 유의어 사이의 작은 의미 차이를 설명하는 사전이며, 반의어 사전은 반의어를 모아 편하게 찾아볼 수 있도록 한 사전이다. 의미 분류 사전은 우리가 쓰는 어휘를 의미 영역의 체계를 따라 만든 사전이다. 그리고 '17세기 국어사전'은 우리 역사의 특정 시기인 17세기에 쓰던 우리말의 모습을 알 수 있게 해 주는 사전이다. 그리고 각종 방언 사전 역시 각 지역의 문화적 특색을 담고 있어서 보는 사람이 색다른 감동을 경험하게 한다. 요즈음은 특히 문학 쪽에서 이른바 시어 사전, 소설어 사전이 나와서 작가가 사용하는 지역 방언과 개인 방언까지 알아 볼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마련해 주기도 한다. 최근에 나온 작품 사전으로는 『염상섭의 만세전․삼대 어휘 해석』(1997), 『한국 현대시 시어 사전』(1997), 『김유정 어휘 사전』(2001), 『염상섭 소설어 사전』(2002), 『정지용 사전』(2003) 등이 있다.
소설을 읽다가 또는 시를 읽다가 모르는 어휘가 있으면 으레 국어사전을 펼쳐 보지만 사전에 실리지 않은 말이 있을 수도 있고 또 사전에 실려 있다 해도 작가가 사전적 의미와 달리 문맥에서 독특하게 사용한 것이 있을 수도 있다. 국어사전은 원칙적으로 표준어 사전이어서 문학 작품에 나오는 지역 방언이나 개인 방언까지를 모두 수용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 예를 아래에서 보기로 한다.
여기에서 '황달증'이라는 어휘는 '황달 증세'로서 얼굴이 노랗게 변하는 간 질환의 하나이다. 그런데 시인을 이를 보리 잎사귀를 묘사하는 데 사용하여 일정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출판된 모든 '이상화 시집'에서는 이것을 '달증'으로 교열하고 있다. 사전에 나오는 이 말이 어쩌다가 이렇게 왜곡되었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또 '이장'이라는 어휘는 '농기구(農器具)'를 뜻하는 대구 방언이다. 이 말은 사전에 보이지 않는데 그렇다고 '미래사'에서 출판한『이상화 시집』에서 '이랑'으로 교열한 것이 합리화되지는 않는다. 자신 없는 말은 사전에서 확인하거나 작가의 고향 사람들에게 확인을 하였더라면 이러한 어리석음은 피해갈 수 있었을 것이다. 또, 청마 유치환의 <항가새꽃>이라는 작품에서 '항가새꽃'은 '엉겅퀴꽃'인데 방언 비슷하게 생각되지만 방언이 아닌 표준어로서 사전에 올라 있다. 이번에는 박목월의 시를 보기로 한다.
여기에서 '아배'는 사전에서 '아버지'의 방언인데 '아베'로 표현하여 개인 방언이 되었다. '알지러요'는 '아시지요'의 뜻인데 지역 방언 또는 개인 방언의 영역은 어미 활용까지를 포함해야 함을 잘 보여 주고 있다. '한손이믄', '배고플라요', '묵고 가이소', '있을락꼬'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엄첩다'는 '대견하다'로 풀이할 수 있는 경남 방언인데 『표준국어대사전』(1999)에도 실려 있다. 또, 목월의 <박꽃>이라는 시에 '아슴아슴, 저녁답, 자근자근'과 같은 말이 있다. '저녁답'은 '저녁때'의 경남 방언으로, 나머지 둘은 표준어로 각각 국어 사전에 올라 있다.
위에서 우리는 문학 작품의 올바른 감상을 위해서 지역 방언이나 문맥에서 개인이 독특하게 사용한 개인 방언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함을 알 수 있었다. 이를 위해서는 앞에서 예를 든 것과 같은 작품 사전 또는 작가 사전 같은 특수 사전이 필요하다. 말하자면 이 모든 어휘를 표준어 사전에 담아서 전달한다면 표준어 사전에 과부하가 걸릴 수 있다. 그래서 이제는 『표준국어대사전』(1999) 이외에 지방 방언이나 개인 방언도 수용할 수 있는 많은 창고를 지어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된다. 그러한 의미에서 위에 언급한 몇 가지 작품 사전은 이 작업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로서 주목받아 마땅하다. 더 늦기 전에 남북한의 지역 방언(해외 동포의 방언)을 널리 모으고 또 전문 용어, 분야별 용어, 계층어, 문학어 등 광범한 언어를 수집 정리하여 따로 마련한 빈 창고를 채워야 한다. 이 일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국어학자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