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 감상]
황지우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김옥순(金玉順) / 국립국어연구원

영화(映畵)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群)을 이루며
갈대 숲을 이륙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렬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죽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1983, 문학과지성사)

황지우(1952~)의 시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는 시 제목이자 시집 제목이면서 연극의 제목으로 공연되기도 하였다. 시인은 1970년대에 '유신' 반대 시위에 연루되어 대학 때 강제 입영하였고 1980년대에는 광주민주화운동에 가담한 혐의로 구속되었던 경력이 있다. 이 시를 보면 1980년대의 풍경화가 떠오른다. 그 당시 애국가가 나올 때 화면에서는 을숙도의 새떼들이 날아가는 장면이 있었고 영화를 볼 때에도 자리에서 일어나 애국가를 들어야 했던 군인 출신 대통령이 통치하던 시절이었다. 이 시를 읽으면 그 당시 영화관에 갔을 때 애국심을 강요(?)당해야 했던 억압된 사회 분위기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기억한다. 이런 강요적인 요소는 '삼천리 화려 강산'이라는 애국가의 가사를 인용할 때에도 묘하게 배어 나온다. 이 시에서 애국가의 한 구절을 인용하는 것을 읽으면서 과연 언제 대한민국이 '화려 강산'이었나하는 회의도 한편으로 새어나온다.
    이렇게 1980년대의 영화관 화면과 애국가 음악 연주의 사실 묘사를 시로 쓰는 기법은 마치 그림을 그릴 때 새롭게 색칠하여 붓으로 그리기보다 신문을 뜯어서 캔버스에 붙이거나 이미 만들어진 코카콜라 광고,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의 사진 등을 화면에 재현하는 페스티시(pastiche)적 모방 기법을 느끼게 한다. 마찬가지로 "돈 급히 쓰실 분/ 댄스 빨리 배우실 분/ 여종업원 금방 필요하신 분/독신녀 진실남 구하시는 분/ 뭐, 이런 분들도 있을 수 있지만/ 이 벽 속에는 보다시피, 단식 투쟁한 舊(구) 정치인의 소문이 없다"('벽 2')의 시에서처럼 벽에 붙인 신문의 광고를 시구로 직접 인용하는 인용, 차용, 전용(轉用)의 기법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기법은 예술의 심미적 생산 행위 자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하나의 형식을 창조하는 팝-아트(pop art) 미술을 연상시킨다.
    그 시대를 그대로 재현하는 뉴스의 한 장면이나 신문 광고의 인용을 통해 시인은 시대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그 시대를 비판적인 거리를 두고 바라보고 있다. 이렇게 억압된 정치 사회적 배경을 깔고 이 시를 읽어 보면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하는 구절은 인생을 달관한 보편적인 생로병사(生老病死)의 흐름을 의미한다기보다 정치적 탄압으로 젊은 생명이 세상을 뜨거나 이 대한민국에서 도저히 살 수 없어서 다른 나라로 피신할 수밖에 없는 속칭 '운동권 출신'들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적인 억압이 없는 자유로운 사회를 향해 새들처럼 떠나고 싶은 바람의 표현으로도 느껴진다.
    이 시에 유독 많이 나타나는 '세상'이라는 말에 주목하면 '자기들의 세상', '이 세상', '이 세상 밖'이란 표현이 이상적인 정치가 이루어지는 어떤 사회를 꿈꾸는 듯하다. 그러나 유토피아적 꿈을 나타낸다기에는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란 끝 구절에서 앞의 새들의 비상과는 대조적인 현실 상황이 실망스러운 결말로 다가온다. 한 시대를 지켜본 시인의 자의식이 잘 드러난 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