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 감상]
강은교 시 '자전'

김옥순(金玉順) / 국립국어연구원

1) 날이 저문다./ 먼 곳에서 빈 뜰이 넘어진다./ 무한천공 바람 겹겹이/사람은 혼자 펄럭이고/ 조금씩 파도치는 거리의 집들/ 끝까지 남아 있는 햇빛 하나가/ 어딜까 어딜까 도시를 끌고 간다.//
2) 날이 저문다./ 날마다 우리나라에 / 아름다운 여자들은 떨어져 쌓인다.//
3) 잠 속에서도 빨리빨리 걸으며/ 침상 밖으로 흩어지는/ 모래는 끝없고/한 겹씩 벗겨지는 생사의/ 저 캄캄한 수세기를 향하여/ 아무도/ 자기의 살을 감출 수는 없다.//
4) 집이 흐느낀다./ 날이 저문다. / 바람에 갇혀/ 일평생이 낙과처럼 흔들린다.
높은 지붕마다 남몰래/ 하늘의 넓은 시계소리를 걸어 놓으며/ 광야에 쌓이는/ 아, 아름다운 모래의 여자들//
5) 부서지면서 우리는/ 가장 긴 그림자를 뒤에 남겼다. [자전(自轉)]

강은교(姜恩喬, 1945-)의 이 시는 재난 영화를 보는 것 같다. 해가 지면서 갑자기 무한히 열린 하늘에서 바람이 불어 지구의 모든 물체들이 넘어지고, 펄럭이고, 파도친다. 땅이 갈라지고 뜰이 넘어진다. 태풍에 몰려 사람들은 무게가 거의 없는 얇은 헝겊처럼 펄럭인다. 강력한 해일이 밀려와 거리의 집들은 파도치듯 부서지고 무너진다. 마지막까지 남은 햇빛 하나가 도시를 이끌고 도망가는데 도시가 움직인다는 현상 또한 낯설다. 도시는 지구에 사는 우리의 눈에는 정지 상태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시에서 이런 현상은 날이 저물기 때문에 생긴 것으로 자전 현상에 대한 시인의 독특한 시선이 느껴진다. 모든 물체의 중력이 사라져 헝겊이나 액체로 화한다.
    1연에서 이 시의 주 대상인 혼자 펄럭이는 사람'은 2연에서 '아름다운 여자'로 구체화된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여자 또한 시간에 휩쓸려 태풍에 흔들리는 나무처럼 땅에 떨어져 쌓인다. 식물이 땅에 떨어져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흙이 되듯이 아름다운 여자들도 흙이 되고 다시 수세기의 풍화작용을 통해 모래가 된다. 앞의 공간에서 중력이 사라지듯이 이 기나긴 풍화작용의 과정은 한평생의 시작과 종말이란 시간의 한 매듭으로 압축된다. 영화에서 필름을 빨리 돌린 것처럼 한 아름다운 여자의 일생이 순식간에 사막의 모래알로 변한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이 시에 나타난 '아름다운 여자'는 시적 대상이면서 동시에 시적 자아 자신이기도 하므로 생명의 풍화작용은 미래의 사항이라는 것이다. 1연의 '끝까지 남아 있는 햇빛 하나'에서 암시하듯이 그녀는 아직 생명의 사슬 속에 있다. 2-3연에 오면 죽어가는 여자는 낙엽처럼 떨어져 쌓이고, 자는 여자는 언젠가 죽은 여자가 될 것이다. 영사기를 빨리 돌리듯이 화면의 아름다운 여자는 침상에서 바로 모래로 변하는데 그 비밀은 수세기를 사색할 때 생긴다. 거대한 시간으로 보면 지상의 존재는 순식간에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이다.
    슈베르트(F. Schubert, 1797-1828)의 음악 '죽음과 소녀'처럼, 아니면 뭉크(E.Munch, 1863-1944)의 젊은 여자가 해골과 포옹하고 있는 그림처럼 아름다운 살을 자랑하는 젊은 여자의 몸은 해골을 지나 모래가 된다. 3연부터 앞의 비유들이 정리된다. 집은 흐느끼고 해는 무기력하게 저물고 세상은 모래가 쌓인 광야로 비유된다. 일평생은 무기력하게 바람에 흔들리는 과실처럼 곧 땅에 떨어져 모래가 된다. 시적 화자가 예견하는 대상인 아름다운 여자의 이미지는 침통함 그 자체다.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온 죽음에 대한 인식은 마치 지구가 혹성과 충돌하는 것과 같고, 그것은 하늘로부터 태풍과 지진이 일어나 땅이 갈라지고 사람이 해일에 휩쓸려버리는 종말의 엄청난 순간의 충격으로 표현된다. 이 시는 이렇듯 시적 화자와 같은 맑은 영혼이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에 대한 아쉬움을 남기면서 다가올 종말의 순간을 파괴적인 상상력을 통해 예견하고 있다. (참고로 말하면 시인은 젊어서 죽음의 선고를 받은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