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용 표현의 이해]
'시작하다'의 의미를 나타내는 관용 표현

김한샘 / 국립국어연구원

우리말에는 상황에 따라 말맛을 살려 골라 쓸 수 있는 관용 표현이 많이 있다. 이번 호에서는 '시작하다'의 의미를 나타내는 여러 가지 관용 표현에 대해 살펴보도록 한다.

(1) ᄀ. 사회생활의 첫걸음마를 떼긴 했지만 모든 것이 아직은 서투르네요.
ᄂ. 걸음마를 뗀지 5년이 지나서야 사업이 안정기에 접어들었습니다.
(2) 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의 첫발을 떼었습니다.
ᄂ. 쪹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의 발을 떼었습니다.

(1)과 (2)의 관용 표현은 둘 다 '떼다'를 구성 요소로 하고 '시작하다'의 의미를 나타내는데, (1)의 경우 '첫걸음마'와 '걸음마'를 바꾸어 쓸 수 있지만 (2)는 ᄂ에서 보는 바와 같이 '첫발' 대신에 '발'을 쓰면 어색하다. '발을 떼다'만으로는 '시작하다'의 의미가 전달되지 않는다.

(3) ᄀ. 영화에 첫발을 디딘 지 어언 30년이 지났습니다.
ᄂ. 연예계에 발을 디딘 지 15년이 지났지만 아직 스타가 되지 못했습니다.
(4) ᄀ. 대학 때 연극 동아리를 통해서 연기에 첫발을 내디뎠다.
ᄂ. 연극계에 발을 내디딘 지 10년이 되었어요.
(5) ᄀ. 정치에 첫발을 들여놓을 때만 해도 세상 물정을 몰랐었습니다.
ᄂ. 정치판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 잘못이었다.

(3)~(5)는 '(첫)발'이 '디디다', '내디디다', '들여놓다' 등의 동사와 함께 쓰여 '시작하다'의 뜻을 나타내는 예들이다. (3)~(5)의 관용 표현은 시작의 대상을 나타낼 때 조사 '에'를 쓴다. '에'와 함께 쓰이는 명사들은 '영화', '연기', '정치'처럼 시작하는 일을 구체적으로 나타내기도 하지만 '연예계, 연극계, 정치판' 등과 같이 그런 일을 하는 사회를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

(6) ᄀ. 7~80년대에 대학생들이 민주화의 싹을 틔웠다.
ᄂ. 공 박사님은 정보화의 움을 틔우신 분입니다.
(7) ᄀ. 우리 회사에서 해외 건설 사업의 첫 삽을 떴습니다.
ᄂ. 이번 사업의 첫 삽을 뜨신 분이 바로 박 부장이에요.
(8) 루터가 종교 개혁의 닻을 올렸다.

(6)~(8)의 밑줄 친 표현들도 넓은 의미에서 '시작하다'라는 뜻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 표현들은 (1)~(5)와 비교할 때 시작하는 일의 규모가 다르다. (1)~(5)가 개인적인 일을 시작한다는 뜻인 반면 (6)~(8)은 민주화, 건설, 개혁 등 혼자 힘으로 할 수 없는 큰일이 시작되는 데에 기여한다는 의미이다.

(9) ᄀ. 적군은 매일 아침 10시가 되면 포문을 열었다.
ᄂ. 상대방의 말이 끝나자 김 교수가 반론의 포문을 열었다.

(9ᄂ)의 '포문을 열다'도 역시 '시작하다'의 의미를 나타낸다. 다만 '상대방을 공격하는 발언'을 시작하는 경우에 쓰인다. (9ᄀ)처럼 전쟁에서 대포를 쏘아 공격하는 것을 나타내던 표현이 설전(舌戰)에도 적용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