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 감상]

서정주의 시 '그 애가 물동이의 물을 한 방울도 안 엎지르고 걸어왔을 때'

김옥순(金玉順) / 국립국어연구원

그 애가 샘에서 물동이에 물을 길어 머리 위에 이고 오는 것을 나는 항용 모시밭 사잇길에 서서 지켜보고 있었는데요. 동이 갓의 물방울이 그 애의 이마에 들어 그 애 눈썹을 적시고 있을 때는 그 애는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냥 지나갔지만, 그 동이의 물을 한 방울도 안 엎지르고 조심해 걸어와서 내 앞을 지날 때는 그 애는 내게 눈을 보내 나와 눈을 맞추고 빙그레 소리없이 웃었습니다. 아마 그 애는 그 물동이의 물을 한 방울도 안 엎지르고 걸을 수 있을 때만 나하고 눈을 맞추기로 작정했던 것이겠지요. ('그 애가 물동이의 물을 한 방울도 안 엎지르고 걸어왔을 때', '질마재 신화', 1975.)

서정주(徐廷柱, 1915-2000)의 시 '그 애가 물동이의 물을 한 방울도 안 엎지르고 걸어왔을 때'에서 물동이를 이는 동작은 앵그르(Ingres, 1780-1867)의 그림 '샘'에서도 나타나는 것처럼 인체 구조상 상당히 거북하며 물을 흘리지 않고 걷는다는 일 또한 힘든 일이다. 사람의 손이 닫지 않는 마을 밖의 샘에서 운반해 오는 물동이의 물은 정지 상태를 유지해야만 성공적으로 걸어오는 것이 된다. 여기서 반복되는 '물 길어 나르기'의 노동이 성공했을 때 보여주는 '그 애'의 여신과 같은 자세와 움직임은 오직 원초적 행위의 반복, 즉 원시시대부터 계속된 신성한 행위의 반복을 통해 신체의 리듬을 우주의 리듬에 맞추어 왔던 신화적인 순간을 나타낸다. 서정주의 고향 마을 '질마재'의 일상적인 일들은 그의 시를 통해 '삼국유사'에나 등장하는 신들의 공간으로 바뀐다. 그것을 은유를 통해 보면 다음과 같다.

우주 = 인체
l   l
=

우주의 샘은 인체의 눈과 같다는 유추적 은유가 성립한다. 우주의 눈은 자연에서는 샘이 되고, 인체의 샘은 사람에게는 눈이 된다. 모든 생물이 살아가는 데 가장 필수적인 것이 물이라면 우주의 핵심을 이루는 샘이 바로 그 역할을 한다. 그 역할이 성공한 순간에 그 애의 눈은 우주의 리듬을 나타내게 되고 그 애는 여유 있게 나와 눈을 맞추는 의식을 치룬다.

그 애가
성공적으로
샘물을 --------------------------------------- 눈을
가져오다/못 가져오다 ---------------- 맞추다/못 맞추다

샘에서 길어 온 물과 생체 리듬과의 조화는 인체와 우주의 조화를 가져오고, 동시에 나(남자 아이)와 그 애 (여자 아이)의 눈 맞춤으로 실현된다. 남녀의 눈 맞춤이란 사건은 이 시에서 길어 온 샘물과 그 애와의 리듬이 필수 선행 조건을 이루고 그 애와의 눈 맞춤을 통해 우주적 눈 맞춤이란 불가시적 사건을 겪게 된다. 물동이의 물이 우주의 눈으로 화할 수 있는 순간은 우주의 리듬이 인체에 들어와 주체가 소멸되는 순간을 이룬다.
    그 애가 인체의 균형을 깨뜨린 상태일 때는 물동이의 물이 '동이 갓을 흘러 눈을 가리우는' 베일의 구실을 한다. 베일은 곧 깨달음의 심연을 파고들 수 없도록 막는 구실을 한다. 그 애가 동이 갓의 물을 흘리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의 걸음의 리듬을 우주의 리듬과 균형을 이루어 자기가 소멸되는 신바람의 순간이 되어야 한다. 그 순간 그 애는 일상적인 동네 아이가 아니라 여신처럼 위엄 있게 우주와 일치된 무아(無我)의 눈길로 시적 화자와 눈 맞춤을 하는 인물로 변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