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언의 이해]

가을걷이 풍경의 변화, 그리고 방언

이상규(李相揆) / 경북대학교

그리 멀지 않은 옛날, 가을걷이 무렵이면 온 농촌 들녘은 와롱기 소리로 소란스러웠다. 와롱기란 와롱와롱 소리를 내는 곡식을 타작하는 기계인 탈곡기를 이르는 경상도 방언이다. 너른 들 이곳 저곳에서 와롱기로 타작하는 어른들의 모습은 먼지 바람 속에서 바쁘고, 우리들은 또한 새참거리 나르느라 숨가쁘게 들판을 누볐던 추억이 새롭다. 최소한 둘 이상의 어른이 발을 맞춰 디뎌서 돌려야 하는 탈곡기는 둘의 호흡이 조금만 맞지 않아도 경쾌한 소리가 나질 않고 풀 죽은 소리가 난다. 멀리서 탈곡기 소리만 들어도 일꾼의 호흡이 맞는지 맞지 않는지를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그 시절 그 소리는 우리에겐 일상의 소리였다.
    타작으로 날리는 나락 홰기의 까끄래기(검불)가 땀과 범벅이 되면 몹시 따끔거려, 목이며 몸 구석구석까지 벌겋게 되도록 긁어 대곤 했다. 그래도 그 따위 검불쯤은 한 해 농사 결산의 기쁨과 벌컥벌컥 마시는 시원한 탁배기(막걸리) 한 사발이면 다 씻어버릴 수 있었다. 지금 그리도 신명 잡혀 일하시던 어른 분들은 거의 돌아가시고 농촌 들녘은 한 두 대의 트랙터만 굉음을 내는 살풍경이 되고 말았다.
    그보다 이른 시절에는 잘개돌(탯돌)이라는 커다란 돌에 나락 단을 새끼줄로 묶어 그 돌에 내려쳐서 벼 알을 털어 내는 탈곡 방식이 있었다. 물론 요사이도 콩 타작이나 깨 타작을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하고 있다. 그때 나락을 묶는 줄을 '탯줄' 또는 '잘개줄'이라고 하고 그러한 탈곡 방법을 '잘개타작'이라 불렀다. 더 시골로 들어가면 대나무로 빗살처럼 엮어 나락을 그 사이사이에 끼워 넣어 당겨내면서 타작을 했는데 이런 타작 방식은 '호리깨', '집께', '홀깨타작'이라고 불렀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이러한 추억 어린 농경 방식을 구경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자동 기계화 시대라서 트랙터 한 대가 들판에서 타작과 도정을 동시에 해내니 한없이 편리해지긴 했으나 우리들의 고향 농촌은 그만큼 더 황량하고 쓸쓸할 뿐이다.
    이처럼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 변화하면서 사람들이 사용하던 각종 일상 용구들도 변화하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 그러면서 이전의 삶의 도구들의 이름도 자연적으로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 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요즘은 "엄마 아빠 어렸을 적엔..." 따위의 인형전과 같은 추억을 파는 전시회가 아니면 민속박물관에 박제되어 녹슬고 먼지 묻은 전시물의 이름표 속에서 만날 따름이다.
    하루 바삐 일상 생활 속에 남아 있는 사라져 가는 방언을 수집해야 한다.br>     방언은 수백 년 전의 문헌에 나타난 어형보다 더 오래된 형태를 보여 주기도 하며, 비교 언어학적 연구 혹은 내적 재구와 같은 언어학적인 연구를 위해서 매우 유용한 증거를 제공해 주기도 한다. 또한 방언을 통해 우리 선조들의 일상적 삶의 현장을 재구할 수도 있다.
    누누이 얘기하지만 땅속에서 발굴해 내는 유형 문화재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만큼이나 소중한 것은 얼마전까지 일상어로 사용한 방언을 잊지 않을 수 있도록 보존하는 일이다. 방언은 무형문화재적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 생활 방언 조사와 같은 일은 국가가 나서서 시급히 추진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