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용 표현의 이해]

신체의 동작과 관련된 관용 표현

김한샘 / 국립국어연구원

일반적으로 관용 표현은 구성 요소 각각이 의미를 잃어버리고 표현 전체가 새로운 의미를 나타낸다.

(1) ᄀ. 철수 생일이라 아침에 미역국을 먹었어요.
ᄂ. 박 과장은 승진 시험에서 미역국을 먹어서 기분이 안 좋습니다.
(2) ᄀ. 마당에 채송화가 꽃을 피웠어요.
ᄂ. 통일 신라 시대에 불교 문화가 꽃을 피웠습니다.

(1ᄀ)의 '미역국을 먹다'와 (1ᄂ)의 '미역국을 먹다'를 비교해 보면 ᄀ과 달리 ᄂ에서는 '미역으로 끓인 국을 입을 통하여 배 속에 들여보내다'라는 원래의 의미를 찾아볼 수 없다. '시험에서 떨어지다'의 의미만 나타내는 것이다.
    (2)의 '꽃을 피우다'도 마찬가지이다. ᄂ에 '꽃의 봉오리가 벌어지다'라는 의미는 남아 있지 않다.
    관용 표현 중에는 이런 일반적인 경우와 달리 원래의 의미가 남아 있는 것들도 있는데, 신체의 동작과 관련된 관용 표현 중에 이런 예가 많다. 다음 예에 보인 관용 표현은 본디의 의미가 남아 있어서 신체의 동작을 동반하게 된다.

(3) ᄀ. 모두 눈을 감고 반성의 시간을 가지세요.
ᄂ. 베토벤은 57세의 나이에 눈을 감았다.
(4) ᄀ. 소녀는 문틈으로 반쯤 얼굴을 보였다.
ᄂ. 바쁘지만 잠깐이라도 행사장에 얼굴을 보여야죠.

(3ᄂ)의 '눈을 감다', (4ᄂ)의 '얼굴을 보이다'는 각각 '죽다', '참석하다'의 뜻을 가진 관용 표현이다. 죽으면 자연스레 눈이 감기게 되어 있고 어떤 자리에 참석을 한다면 당연히 그 사람의 얼굴이 보이기 때문에 '눈을 감고', '얼굴을 보이는' 행동이 필수적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반면 이러한 동작이 필수적이지 않은 경우도 있다.

(5) ᄀ. 신나는 음악이 나오자 사람들은 고개를 흔들었다.
ᄂ. 결혼을 허락해 달라는 언니의 말에 아버지는 고개를 흔드셨다.
ᄃ. 다시 작업을 하기는 했는데 팀장님이 또 고개를 흔드실까 봐 걱정이에요.
(6) ᄀ. 아이는 입을 내밀어 과자를 받아 먹었다.
ᄂ. 영희는 선물을 뜯어보고 입을 내밀었다.
ᄃ. 여행을 못 가게 되었다고 말하면 아내가 입을 내밀 것이 뻔하다.

(5)~(6)의 ᄀ은 밑줄 친 부분이 문자적인 의미로 쓰인 예이다. ᄂ의 밑줄 친 부분은 (3)~(4)의 예와 같이 신체의 동작을 동반한다. 고개를 흔들어 거절하고 입을 내밀어서 불만을 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5)~(6)이 (3)~(4)와 다른 것은 반드시 동작을 동반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5)~(6) ᄃ의 밑줄 친 부분은 고개를 흔들거나 입을 내미는 동작이 없어도 성립한다.

(7) ᄀ. 수건이 없으니 그냥 손을 털어서 물기를 말리세요.
ᄂ. 난 이제 그 일에서 손 털었으니까 연락하지 마.
(8) ᄀ. 국물이 흘렀으니 입을 씻어라.
ᄂ. 장 선생은 도움 받고 입을 씻을 사람은 아닙니다.

(7)~(8)ᄂ의 관용 표현은 (3)~(6)과 달리 원래의 의미에서 완전히 멀어졌다. 일을 그만 두기 위해 손을 흔들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시치미를 떼기 위해서 입을 닦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발을 빼다(그만두다)', '목을 조이다(괴롭히다)', '발목을 잡다(방해하다)' 등도 본디 의미에서 멀어져 신체의 동작을 동반하지 않는 관용 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