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글 쓰기]

글의 힘

김희진(金希珍) / 국립국어연구원

글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 글이 무엇이기에 우리는 그토록 글쓰기를 중시하는가.

(1) 사또 자제 이 도령이 나이는 십육 세요, 풍채는 두목지라. 도량은 창해 같고 지혜 활달하고 문장은 이백이요, 필법은 왕희지라.('춘향전' 중에서)

우리 고소설에서 등장인물, 특히 주인공을 소개하는 데에 잘생긴 모습과 훌륭한 성품, 그리고 뛰어난 글 솜씨가 앞자리를 차지함은 공식처럼 되어 있다. 그리고 글을 익히게 하는 일을 무엇보다도 중시하여 세 살배기 아이에게도 서둘러 가르친다.

(2) 아이는 문리(文理)를 크게 깨우쳐 마침내 문장(文章)을 이룩하게 되었다.('최고운전' 중에서)

독서를 많이 하고 글을 잘 하는 사람에게는 자질 향상이나 인격 완성이라는 궁극적인 성취 외에 실질적인 혜택이 있었다. 조선조의 경우에 문관 채용에서 사서오경(四書五經), 시(詩)·부(賦)·표(表)·책(策) 등 문장으로 시험을 치르니 온 집안의 성원 아래 글 공부를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도 첫돌 맞은 아이가 돌상에서 다른 물건보다도 붓을 먼저 집으면 집안 사람들이 '가문의 영광'이라며 기뻐하지 않던가.

(3) 이득춘이 어려서부터 학업에 힘써 문장(文章)을 이루매 이름을 나라에 떨치고 (중략) 외직으로 경상 감사, 물망(物望)으로 함경 감사, 내직으로 좌의정을 지냈다.('박씨전' 중에서)

노래(시조) 속에서도 "남아(男兒)의 소년행락(少年行樂) 하올 일이 하고하다. 글 읽기, 칼쓰기, 활쏘기, 벼슬하기......"가 자연스럽게 나타나기에 이른다. 1866년 병인양요(丙寅洋擾) 때 우리 땅을 침범한 프랑스 인들이, 어려서부터 열심히 글 공부를 하는 한국인의 모습을 보고 상당히 놀랐다고 술회한 책도 있다.
    '글'에는 "① 어떤 생각이나 일 따위의 내용을 글자로 나타낸 기록"이라는 뜻 말고도 "② 학문이나 학식"이라는 뜻도 있다. 또 '글하다'란 말이 있어 "① 글을 짓다"의 뜻과 함께 "② 학문을 하다"의 뜻으로도 쓰인다. 위 (1), (2), (3)의 '문장(文章)'은 "문자"나 "글, 글월"이라는 뜻 외에 "예악(禮樂)과 법도", "재능과 학문", 그리고 "문장가(文章家)"도 지칭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글'이 글쓴이의 학문이나 학식, 그리고 사람 됨됨이를 측정하는 하나의 잣대 구실을 오랫동안 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인물을 선택하는 데에 신수, 말씨, 판단력과 함께 문필(文筆)을 요건으로 삼는 '신언서판(身言書判)'도 이러한 인식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 당나라에서 이를 관리 선출의 표준으로 삼을 때 넷 중의 '판(判)'을 '문리(文理)'로 해석하여 "글의 뜻을 깨달아 아는 힘" 또는 "문맥"이라는 뜻에서 시작하여 "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아는 힘"까지 지칭하는 뜻으로 썼다.
    글쓰기를 중시하는 일이 어찌 동양에 한하랴. 서양에서도 이른 시기부터 글쓰기를 기초 교육의 하나로 중시하고 교양 정도를 측정하는 척도로 삼아온 것은 매한가지였다. 글쓰기 능력은 그가 어느 신분에 속해 있는가를 말해 준다. 루이제 린저가 '생의 한가운데'에서 '사람과 그 사람이 쓴 글은 똑같다'고 말한 것도 글과 사람을 동일시해 왔음을 뒷받침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온 인류가 글쓰기를 중시해 온 것은 글이 지닌 엄청난 위력을 절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글쓰기를 통하여 바르게 생각할 수 있는 힘과 창의적으로 사물을 보는 안목을 기를 수 있게 된다. 글쓰기 능력이 사회생활을 원만히 하는 데에 바탕이 되는 동시에 인간다운 생활과 창조적인 생활을 하는 데에 필요함을 인식하고 스스로 이 능력을 향상시키는 일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