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용 표현의 이해]

'도장을 찍다'의 다양한 의미

김한샘 / 국립국어연구원

우리말에는 말맛을 살려 쓸 수 있는 재미있는 관용 표현이 많이 있다. 한 낱말이 여러 가지 뜻으로 쓰일 수 있듯이 관용 표현 중에도 다양한 뜻을 나타내는 것들이 있다. 문자 그대로의 의미가 번져 다양한 뜻을 나타내는 '도장을 찍다'에 대해서 살펴본다.

(1) 도장을 찍어도 되고 서명을 하셔도 됩니다.
(2) 은희는 제대로 도장 찍기 전에는 이사할 수 없다고 버텼다.
(3) 이렇게 매일 싸우며 사느니 차라리 아내와 도장 찍는 게 낫겠다.
(4) ㄱ. 이번 사업은 내가 도장 찍었으니까 눈독 들이지 마세요.
ㄴ. 영수는 첫눈에 반해서 영희를 도장 찍었다.
(5) 사장은 철수를 불성실한 사람으로 도장 찍은 모양이었다.
(6) 어쩌면 너는 이렇게 네 아비를 도장 찍었냐.
(7) 효재는 군대에 가기 전에 명숙에게 도장을 찍지 않으면 언제 그녀의 마음이 변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8) 사람들은 모두 새로 온 사장에게 눈도장을 찍느라고 바빴다.

(1)은 '도장을 찍다'가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쓰인 예이다. 도장을 찍는 실제 행동을 나타낸다. (2)에서 (8)까지는 '도장을 찍다'가 각각 다른 의미로 쓰인 관용 표현의 예들이다. 도장을 찍는 행위가 의미하는 '확인', '확정'의 의미가 번져 나가서 다양한 뜻을 나타내게 되었다.
    (2)와 (3)에서는 '도장을 찍다'가 실제로 도장을 찍는 행위를 반드시 동반한다. (2)에서 '도장을 찍다'는 '계약하다'의 의미로 쓰였는데 보통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것으로 계약이 성립되기 때문에 이런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다. (3)은 최근 들어 이혼율이 높아지면서 쓰임새가 많아진 관용 표현이다.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어야 공식적인 이혼이 성립되기 때문에 '이혼 도장을 찍다'가 '이혼하다'의 의미로 쓰이며, 앞뒤 문맥으로 보아 이해할 수 있을 경우에는 (3)과 같이 '도장을 찍다'라고만 해도 '이혼하다'의 뜻을 나타낸다. (2)와 (3)의 '도장을 찍다'는 모두 도장을 찍어 절차를 밟는다는 의미이다.
    (4)ㄱ.의 '도장을 찍다'는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 마음을 먹다'의 의미이다. 이때 '도장을 찍다'가 사람 관계를 나타내는 데에 쓰이면 애인으로 삼으려고 마음을 먹는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4)의 ㄴ.이 그 예이다.
    (5)에서 '도장을 찍다'는 '간주하다'의 의미이다. 예문의 뜻을 풀어 보자면 사장이 철수를 쭉 지켜본 끝에 불성실하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말이다. 도장을 찍는 것이 어떤 절차의 마지막에 이루어진다는 데에서 이런 의미가 생긴 것이다. 역시 관용 표현인 '낙인을 찍다'도 이런 맥락에서 '간주하다'의 의미를 나타낸다.
    (6)의 '도장을 찍다'는 '쏙 빼닮다'라는 의미로 쓰였다. 얼굴이 많이 닮아서 금방 누구의 자식인지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슷한 의미의 비유적인 표현으로 요즘 같은 날씨에 생각나는 '국화빵'이 있다. (5)는 '어쩌면 너랑 네 아비는 이렇게 국화빵이냐.'로도 표현할 수 있다.
    (7)은 '도장을 찍다'가 '성교하다'의 의미로 쓰인 예이다. 예로부터 우리는 '죽음', '남녀 관계' 등 금기시하는 것에 대해 말할 때 직접적인 표현을 잘 쓰지 않았는데 (6)의 '도장을 찍다'도 '성교하다'라는 직접적인 표현을 피하기 위해 구어에서 많이 쓰인다.
    '도장을 찍다'와 의미적으로 관련이 있는 관용 표현으로 '눈도장을 찍다'가 있다. '눈도장'은 '상대편의 눈에 띄는 일'을 말하며 '눈도장을 찍다'는 '다른 사람에게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을 확인시키다'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8)의 예문은 사람들이 모두 새로 부임한 사장에게 자신이 참석했다는 것을 알리느라고 애썼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