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 성어를 찾아서]

'현두각(見頭角)'과 '절각(折角)'

이준석(李浚碩) / 국립국어연구원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짐승의 뿔을 '자존심'이나 '품위'의 상징 정도로 여겼던 것 같다. 우리 속담에 낙담한 표정을 가리켜 '뿔 뺀 쇠 상'이란 말이 있거니와, 중요한 일을 처리할 때에는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고, 어느 여류 시인은 사슴의 뿔을 가리켜 '관(官)이 아름답다'고 예찬하기도 했다. 물론 돼먹지 않은 사람이 교만한 짓을 할 때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난다.'고도 했지만 이 역시 뿔이 나야 할 곳이 엉덩이가 아닌 다른 곳이라는 뜻으로 해석하면 뿔의 상징적 의미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뿔과 관련된 고사성어를 살펴보면, 강력한 힘이나 남성의 상징으로 뿔을 귀히 여기는 이러한 문화적 징표가 한자 문화권에서는 일반적인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는 여러 사람 가운데 기예(技藝)나 소질 등이 유달리 뛰어나서 두드러질 때 '두각(頭角)을 나타낸다.'라 하고, 기세를 누르거나 콧대를 납작하게 만들 때 '절각(折角)'이라 한다. '두각을 나타내다'는 말은 한유(韓愈)가 지은 유자후묘지명(柳子厚墓誌銘)에 나오는 고사 성어 '현두각(見頭角)'에서 유래한 것으로 '현두각'을 '두각을 나타낸다.'라고 국역한 것이다.

(1) 물리학, 생물학, 인공지능, 의학, 컴퓨터 사이언스, 수학 등 과학의 전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25명의 석학이 참여해 만든 이 미래 예측서는 과학의 발전이 가져올 인류의 미래 모습을 총체적으로 그려 보고 있다. [책마을] 석학 25명의 진단 '인 류의 미래'(조선일보/문화: 2002. 10. 18.)
(2) 스리차판은 지난해 12월31일 인도 첸나이에서 열린 국제테니스투어(ATP)대회서 2위를 차지하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스리차판 "또 나와" (한국일보: 2002. 10. 18.)

한유는 사륙병려체(四六騈儷體)를 배격하고 고문부흥(古文復興) 운동을 일으킨 문장가이고, 유자후묘지명(柳子厚墓誌銘)의 자후(子厚)는 유종원(柳宗元)의 자(字)를 가리키는데 그는 풍자문(諷刺文)과 산문(散文)에 능했었다 한다. 이 둘은 당(唐)나라를 대표하는 문장가들로서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에 속한다.
    이들 두 사람은 서로 깊이 이해하면서 교유(交遊)한 것으로 유명하다. 젊어서부터 필명(筆名)을 드날리면서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던 유종원은 말년이 되면서 한직으로 좌천되는 등 불우한 삶을 살다가 47세의 아까운 나이에 죽게 되었다. 한유는 당시 헌종(憲宗)이 부처의 사리를 모신 것을 간하다가 미움을 사서 조주자사(潮州刺使)로 좌천되어 가던 길에 유종원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되었다. 한유가 비문에 적을 옛 친구의 일생을 정리하면서 그가 26세의 젊은 나이에 과거 시험에 합격한 사실에 이르러서는 '두각을 나타냈다[見頭角]'고 표현하였던 것이다.
    소질이 뛰어난 사람을 가리켜서 현두각(見頭角)이라고 했던 것과는 달리 기세나 콧대를 꺾어 버리는 것을 절각(折角)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한서(漢書)』의 주운전(朱雲傳)에서 유래한 말이다.
    한서(漢書)에는 주운(朱雲)을, 전한(前漢) 시대 성제(成帝)에게 간신인 장우(張禹)를 베어야 한다고 목숨을 걸고 상주(上奏)해서 결국 성제의 마음을 돌렸던 충신으로 기록하고 있다. 한 나라 때는 유학이 크게 융성하여 논쟁이 성행하였는데 당시 유학의 한 갈래인 양구역(梁丘易)의 대가로, 언변이 좋은 오록충종(五鹿充宗)이라는 사람과 주운은 논쟁하게 되었다. 주운과 오록충종 간의 논쟁은 황제와 많은 학자들이 보는 앞에서 진행되었는데, 결국 주운의 승리로 돌아갔다.
    이 논쟁 이후에 사람들은 오록충종의 이름에 사슴 록(鹿)자가 들어 있으므로 이 논쟁을 빗대어 "주운이 그 뿔을 부러뜨렸다.[折角]"라고 했고, 이 고사에 유래하여 사람의 콧대를 꺾는 것을 '절각'이라고 부르게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