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띄어쓰기의 이해]

'한번'과 '한 번'

이운영(李云英) / 국립국어연구원

띄어쓰기에 대해 많이 받는 질문 중의 하나가 '한번'에 관한 것이다. '한번'이라고 붙여 써야 하는지 '한 번'이라고 띄어 써야 하는지가 질문의 주된 내용이다. 실제로 글을 보면 이 둘 다 쓰이고 있다. 심지어 같은 글 안에서도 두 가지 띄어쓰기가 함께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과연 '한번'의 띄어쓰기는 어떻게 해야 하나? 대답은 경우에 따라 둘 다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한번'과 '한 번'은 겉으로 드러난 형태는 같지만 뜻과 쓰이는 환경이 다른 별개의 것이기 때문이다.

(1) ᄀ. 기회는 단 한 번뿐입니다.
ᄂ. 그렇게 자신 있으면 어디 한번 해 보아라.
ᄃ. 언제 한번 식사나 같이 합시다.

위의 예 중 (ᄀ)에서는 '한 번'이라고 띄어 썼고 (ᄂ)과 (ᄃ)에서는 '한번'이라고 붙여 썼다. 이들이 쓰인 문장을 보면 서로 다른 뜻으로 쓰였음을 쉽게 알 수 있다. (ᄀ)에서는 문자 그대로 두 번이나 세 번이 아닌 '1회'라는 의미가 있다. 반면 (ᄂ)에서는 시험 삼아 시도해 본다는 의미로 썼고 (ᄃ)에서는 '기회가 있을 때'라는 의미로 썼다. 즉 '한번'이 '한'과 '번'의 의미를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띄어 쓰고, 합쳐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내면 붙여 쓰게 되는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같은 형태라 해도 의미가 달라짐에 따라 띄어쓰기가 달라지는 경우는 꽤 자주 접할 수 있다.

(2) ᄀ. 바람에 문이 닫히며 큰 소리가 났다.
ᄂ. 그는 늘 큰소리만 쳤지 실제로 하는 것은 별로 없다.
(3) ᄀ. 친구는 마당에 수영장까지 있는 큰 집에서 살고 있다.
ᄂ. 제사를 지내려고 친척들이 모두 큰집으로 모였다.
(4) ᄀ. 아이가 고양이 수염을 잡아당기자 고양이가 놀라 달아났다.
ᄂ. 산에 갔다가 꽃이 핀 고양이수염을 보았다.

위 예문들에서 (ᄀ)에 쓰인 '큰 소리', '큰 집', '고양이 수염'은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가 그대로 살아 있기 때문에 모두 띄어 쓴다. 그러나 (ᄂ)에 쓰인 '큰소리', '큰집', '고양이수염'은 두 단어가 합쳐져 새로운 의미로 쓰인다. (2ᄂ)의 '큰소리'는 사실 이상으로 과장하여 하는 말이고, (3ᄂ)의 '큰집'은 분가하여 나간 집에서 종가를 이르는 말이다. (4ᄂ)의 '고양이수염'도 '고양이의 수염'이 아니라 산에서 자라는 풀의 한 종류이다. 따라서 이러한 어휘들은 전체가 하나의 단어이기 때문에 붙여서 써야 한다.
    형태는 같은데 띄어쓰기를 달리 해야 하는 경우 중에는 다음과 같이 의미상 큰 차이가 없는 것도 있다.

(5) ᄀ. 내일 연주회에는 반드시 긴치마를 입어야 합니다.
ᄂ. 너무 긴 치마를 입었더니 자꾸 발에 밟힌다.
(6) ᄀ. 대문을 파란색으로 칠했더니 시원해 보인다.
ᄂ. 너무 파란 색은 오히려 탁해 보인다.

예문 (5)에 쓰인 '긴치마'와 '긴 치마'는 모두 치마의 길이가 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사전을 찾아보면 '발목까지 가리도록 길게 만든 치마'라는 의미로 '긴치마'가 올라 있다. 그렇다면 '긴치마'는 붙여 쓰는 것이 맞겠으나 (5ᄂ)에서는 '긴 치마'로 띄어 쓰고 있다. 이는 바로 앞에 나온 '너무'라는 수식어 때문이다. '너무'가 꾸미는 것은 '긴'이라는 형용사로, '긴' 다음에 띄어야만 이러한 수식 관계가 제대로 드러나게 된다. 만약 이를 붙이면 '너무'가 '긴치마'라는 명사를 꾸며 주게 되어 문법적으로 옳지 않게 된다. 예문 (6)의 '파란색'도 마찬가지 경우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형태가 같은 단어라 할지라도 의미와 앞뒤 문맥에 따라 띄어쓰기는 달라질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있으면 띄어쓰기가 조금은 쉬워지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