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글 쓰기]

절반의 뜻은 버리고 잘못 쓰는 말들

김희진(金希珍) / 국립국어연구원

단어에 담긴 뜻 중 절반쯤은 흘려버리고 나머지만을 사용한다면 어떻게 될까. 글 쓰는 이가 전하고픈 뜻을 제대로 전달하기는 어렵게 될 것이다. 이 자리에서는 부지불식간에 절반의 뜻을 버리고 쓰는 몇몇 단어를 찾아보기로 한다.

(1-1) 임용시험의 필기고사 난이도가 별로 높지 않은 상황에서 수많은 동점자가 발생할 경우 (후략) (ᄉ신문2002. 10. 8.)
(1-2) 이식술은 (중략) 6~8시간 걸리는 고난이도 수술이다.(ᄌ신문 2002. 10. 9.)
(2) 개인전 금메달리스트인 대만의 유안슈치도 이 도도한 승부의 흐름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ᄉ신문 2002. 10. 11.)
(3) 무료 법률 상담도 서민의 전세금부터 교통사고, 가정 폭력 등 우리 사회에서 소외받는 계층들의 애환이 담긴 사건들이 대부분 이다.(ᄀ신문 2002. 10. 19.)
(4) 이 남자의 인상착의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40대 후반의 평범한 얼굴을 가졌으며 보통 체격에 키는 1m 70cm 안팎이다.(ᄆ신문 2001. 4. 17.)

(1') '난이도(難易度)'는 "어려움과 쉬움의 정도"다. '어려운 정도'를 뜻하는 말은 '난도(難度)' 또는 '곤란도(困難度)'로, "난도가 높음"을 '고난도(高難度)'라 한다. '난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더욱 어려워지므로 각종 시험에서는 어렵고 쉬운 정도를 적절히 맞추고자 난이도를 조정하거나 조절한다. (1-1)의 '난이도'는 '난도'로, (1-2)의 '고난이도'는 '고난도'로 고쳐야 한다.
    (2') '승부(勝負)'는 "이김과 짐"이다. (2)의 '도도(滔滔)한 흐름'은 '승리'의 길을 향하여 막힘없이 기운차게 흐르는 것이지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하는' 흐름은 결코 아니다. 따라서 '승부'를 '승리'로 바꾸어야 한다. "승부가 갈린 것은 연장 13회 초였다."(동아일보 2002. 10. 14.) 또는 "함봉실은 완만한 오르막이 시작되던 32㎞ 지점에서 승부를 걸었고 (후략)"(국민일보 2002. 10. 13.)가 '승부'의 바른 용례다.
    (3') '애환(哀歡)'은 "슬픔과 기쁨"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3)은 무료 법률 상담 내용이 대부분이 소외받는 서민들의 전세금, 교통사고, 가정 폭력 등을 둘러싼 사건들이라 밝히면서 도 서민들이 느끼는 보람이나 만족감 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으므로 '애환' 아닌, '고충', '고통' 또는 '비애'라고 해야 옳다. "그들의 입성이나 표정, 눈길에서 (중략) 이 땅 사람들의 슬픔과 기쁨이 묻어난다. 해학과 풍자 어린 화폭 뒤쪽으로 어쩔 수 없는 삶의 애환이 절절하게 배어 나온다." (한국일보 2002. 10. 8. )는 '애환'을 제대로 쓴 예다.
    (4') '인상착의(人相着衣)'는 "사람의 생김새와 옷차림"을 이른다. (4)는 생김새만 말했을 뿐 옷차림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으므로 '인상착의'를 '인상'만으로 한정해야 한다. "범인의 인상착의는 '40세 가량에 베이지색 모자와 감색 운동복을 입은 곱슬머리 남자' "(조선일보 2001. 5. 21.)라는 기사는 인상이 40세 가량으로 보이는 곱슬머리 남자라는 점, 그리고 착의가 베이지색 모자와 감색 운동복이라는 점을 밝혔으므로 '인상착의'의 용례가 된다.
    이상의 예를 보면 '난이도'는 '쉬움'을, '승부'는 '짐(패배)'을, '애환'은 '기쁨'을, '인상착의'는 '착의'를 각각 놓쳐 버려 결국 절반의 뜻만을 취한 것을 알 수 있었다. 한 단어에 대등한 자격으로 담긴 어기(語基)들 중 앞자리에 있는 것만 챙기고 뒷자리에 있는 것은 소홀히 하거나 잊어버린 것이다. 이젠 단어 속의 뒷자리에 있는 뜻도 돌아보며 한 단어에 오롯이 담긴 뜻을 살뜰하게 살펴 버릇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