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맞춤법의 이해

'문득'과 '문뜩'

정호성(鄭虎聲) / 국립국어연구원

다음 예문의 빈칸에 들어갈 알맞은 말을 생각해 보자. (1) 예문에서 (ᄀ)과 (ᄂ)에는 '생각이나 느낌 따위가 갑자기 떠오르는 모양'을, (ᄃ)과 (ᄅ)에는 '어떤 행위가 갑자기 이루어지는 모양'을 뜻하는 두 음절의 부사를 넣으려고 한다.

(1) ᄀ. 어느 날 □□ 어릴 적 친구가 생각났다.
ᄂ. 그동안 잊고 있었던 일이 □□ 떠올랐다.
ᄃ. 나는 □□ 고개를 들어 창 너머로 하늘을 보곤 한다.
ᄅ. 묵묵히 걷다 말고 그는 □□ 걸음을 멈추었다.

위 예문의 빈칸은 모두 [문뜩]이라고 발음하는 말이 들어갈 자리임을 금세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문뜩]이라는 발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말을 어떻게 표기할 것인가에 있다. 다시 빈칸에 들어갈 알맞은 표기는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자. 대부분은 (ᄀ~ᄅ)의 모든 경우에 '문득'으로 적는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렇다면 표기는 '문득'으로 하고, 그 발음은 [문뜩]으로 한다는 결론이 나오게 되는데, 과연 '문득'을 [문뜩]으로 발음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
    '한글 맞춤법' 제5항에는 "한 단어 안에서 뚜렷한 까닭 없이 나는 된소리는 다음 음절의 첫소리를 된소리로 적는다."라고 규정하고, 특히 'ᄂ, ᄅ, ᄆ, ᄋ' 받침 뒤에서 나는 된소리도 표기에 반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산뜻하다], [살짝], [움찔], [몽땅] 등과 같이 한 단어 안에서 'ᄂ, ᄅ, ᄆ, ᄋ' 받침 뒤에서 나는 된소리는 '산뜻하다', '살짝', '움찔', '몽땅' 등과 같이 표기에 그 된소리를 밝혀 적어야 한다. 그러므로 [문뜩]으로 발음하는 말은 이 조항에 따르면 '문득'이 아니라 '문뜩'으로 적어야 함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위 예문 (1)에서 그 표기가 모두 '문득'이라고 대답한 것은 잘못인가? 그렇지 않다.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면 '문득'과 '문뜩' 두 말의 의미는 동일하지만 '문뜩'이 '문득'보다 센 느낌을 주는 말로 풀이가 되어 있다. 그렇다면 '문득'은 어떻게 발음해야 할까? 이 말은 글자 그대로 [문득]으로 발음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문득]으로 발음하는 말은 '문득'으로 적어야 하고, [문뜩]으로 발음하는 말은 '문뜩'으로 적어야 한다. 그러므로 [문뜩]으로 발음하는 말을 '문득'으로 적으면 잘못이 된다.
    이와 같이 국어에는 한 단어 안에서 자음이나 모음 하나를 달리하여 그 말의 느낌, 즉 어감을 달리하는 일이 많다. '문득/문뜩'과 같이 그 발음에 따라 구별해서 적어야 할 말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더 있다.

(2) 깜박/깜빡, 꼼작/꼼짝, 끈덕끈덕/끈떡끈떡, 방긋/방끗, 번득/번뜩, 번듯/번뜻, 번적/번쩍, 생긋/생끗, 싱긋/싱끗, 흘긋/흘끗, 흘깃/흘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