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 특집

'장본인'과 '전혀·너무'

강재형(姜載馨) / 문화 방송(MBC)아나운서

요즘 신문에는 읽을거리가 많아서 좋다. 대통령 선거 후보의 지지율 여론 조사나 연예 비리에 사건 수사 속보 따위의 얘기가 많아서 그런 건 아니다. 정치 얘기나 연예가 정보라 해 봐야 그 나물에 그 밥인 경우가 많은 건 어제오늘 얘기도 아니니 재미있을 거까지야 없는 건 여러분도 마찬가지일 게다. '폼' 좀 잡으면서 털어놓자면 토요일이면 신문마다 앞 다투어 내놓는 이른바 '북 섹션' 덕분에 그렇다. 볼 만한 책, 쓸 만한 책, 간직하고 싶은 책.... 날마다 적잖은 출판사에서 찍어 내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책들을 일일이 볼 수도 없을뿐더러 설령 볼 수 있다 하더라도 만만찮은 책값 감당하는 것도 월급쟁이로서는 보통 일이 아닌 형편인 나에게 '제값 하는 책'의 '다이제스트 판'을 실어 주기 때문이다. 좋은 일이다.
    신문사마다 다른 이름을 붙이긴 했어도 다루는 책이나 편집 방향은 거개가 비슷한 느낌인 '북 섹션'. 내겐 '책 읽는 간접 경험'을 안겨 주는 기특함에다 '글 쓸 거리(얘깃거리)'를 제공하는 고마운 존재기도 하다. 이번에도 그렇다. 눈에 띄는 책―"뉴욕 에스키모 미닉의 일생"―이 있었으니까.
    에스키모 소년 미닉의 28년 짧은 삶을 다룬 전기(傳記). '박물관에 있는 유골이 아버지'임을 알고 갖가지 방법으로 '유골 송환'에 애쓰지만 끝내 선친의 유골을 수습하지 못하고 '문명 세계의 풍토병'에 걸려 생을 마감한 미닉의 일생. 미시사(微視史) 작업의 하나로 꼽은 이 책을 소개하며 각 신문의 여러 기자들은 '북극 수탈의 장본인은 뜻밖에도 인류 최초의 북극점에 도달한 불굴의 탐험가로 알려진 영웅 토마스 피어리'임을 알려 주고 있다. 공명심과 돈을 위해 북극의 자원과 에스키모 유골 따위를 박물관이나 지인들에게 공급한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덧붙인다. 에스키모들의 비운에 공감한다면 그들을 부르는 명칭을 (그들의 모국어인) 이눅티투트 어로 '사람'을 뜻하는 '이누이트'로 바꾸자고 말이다. '에스키모'는 '날고기를 먹는 사람'이라는 부정적인 뜻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두 가지를 짚고 넘어가자. 먼저 '장본인'이다. '장본인'이나 '주인공'이나 '그놈이 그놈'쯤으로 알고 쓰고 있지만 둘의 뜻 차이는 사뭇 다르다. 장본인에 담긴 뜻은 '나쁜 놈'이고 주인공은 '좋은 사람'의 뜻이 강하다. 굳이 영어를 빌려 풀이하자면 장본인은 '노터리어스(notorios)'한 사람, 주인공은 '페이머스(famous)'한 사람인 셈이다. '유명하다'의 반대가 '유명하지 않다'인 것처럼 영어에서도 '페이머스(famous)'의 반대는 '인퍼머스(infamous)'이지만 '악명'과 '오명'의 느낌이 강한, '페이머스(famous)'에 맞서는 말은 '노터리우스'인 것이이다.
    이처럼 흔히 혼동해 쓰지만 적절하지 않은 표현이 또 있다. '전혀', '너무'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전혀 새로운 가구
너무 예쁜 사람

위 표현은 바른 것일까, 잘못된 것일까. 뭐, 이 자리에서 '문제 표현'으로 다룬 것이니 별생각 없이 '잘못된 것'으로 찍어도 된다. 그렇다. '전혀'는 주로 부정하는 뜻을 나타내는 낱말과 함께 쓰여 '도무지', '아주', '완전히'의 뜻을 나타낸다. "전혀 관계가 없다."나 "그들의 관계는 전혀 진전이 없었다."처럼 쓰는 표현이다. 그래서 '전혀 새롭다'는 표현은 앞뒤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럼 어떻게 바꾸면 좋을까. '완전히 새로운'쯤으로 하면 된다. '너무'도 마찬가지다. '너무'의 뜻은 '일정한 정도나 한계에 지나치게'로 부정적인 뜻을 담고 있는 말이다. "(열심히 공부해도 풀기에는) 너무 어렵다."나 "(어린이가 하기에는) 너무 위험하다."처럼 쓰는 게 맞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過猶不及)'란 옛말을 떠올려 보면 '너무'란 말을 '너무' 많이 쓰는 게 '너무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부정적'인 내용에 '긍정적'인 표현을 쓰는 '전혀', '너무' 따위의 남용을 꼬집다 보니 떠오르는 말이 또 있다. '굉장히'가 그것이다. '굉장히'는 '아주 크고 훌륭하다. 보통 이상으로 대단하다'의 뜻으로 "이 일에는 굉장한 용기가 필요하다."처럼 쓰는 말이다. '굉장히 작다' 따위는 그래서 그냥 넘길 수 없는 표현이다. 작으면 작았지 '(보통보다 아주 크고 훌륭하게) 작다'는 말은 논리상 '전혀' 안 맞는 말이기에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