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어원

'기침'과 '고뿔'

홍윤표(洪允杓) / 연세대학교

도대체 감기는 왜 그렇게 내 곁을 떠나지 않고 늘 내 주위를 맴돌고 있는지 모르겠다. 감기가 걸리면 예외 없이 열이 나고 기침이 나고 콧물이 난다. 코에 손을 갖다 대 보면 열이 느껴진다. 이러면 옛날에는 '고뿔 들었다'고 했다. 그런데 요즈음은 '감기 걸렸다'거나 더 심하면 '독감 걸렸다'고 한다.
    원래 '기침'은 '기춤', '기츰', '기촘', '깃츰' 등으로 사용되었는데, 15세기에는 '기춤', '기츰'만 보이다가 16세기 말부터 '기'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기'은 18세기 말까지 사용되고 '기'은 19세기까지 사용된다. '깃츰'은 19세기 말에 나타나지만 '기츰'의 다른 표기일 뿐이다. 오늘날 우리가 쓰고 있는 '기침'은 19세기 말에 처음 나타난다. 그도 그럴 것이 '기츰'의 '츰'은 치찰음 밑에서 모음 'ᅳ'가 'ᅵ'로 되는 현상에 따른 것인데, 비어두 음절에서 이러한 음운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 19세기 말이기 때문이다. '브즈러니'가 '부지러니'로 되고 '쓸데없이'가 '씰데없이'로 되는 것이 그러한 현상의 예이다.

 기춤시며  彈指시니 <"석보상절"(1447)에서>
과리 기츰 기치고 <"구급간이방"(1489)에서>
기 며 트림며 욤며 기며 하외욤며 기지게 혀며 <"소학언해"(1586)에서>
깃다〔咳唾〕 <"한불자전"(1880년)>

'기침'은 언뜻 봐서는 더 이상 분석할 수 없는 단어로 보이지만 형태소 분석이 가능하다. '기춤', '기츰' 등은 동사 어간 '깆-'에 명사 파생 접미사 '-움/음'이 통합된 것이다.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깆다'란 단어는 '기침하다'란 뜻으로 사용되었다. '깆다'는 동족목적어(同族目的語)를 취하는 동사다. 그래서 '깃는 기춤, 기춤 깆다' 등으로만 사용된다.

야 깃 기춤은 추미 걸오 고히 덥고 비린 긔운도 이셔 <"구급간이방"(1489)에서>
폣 긔운이 차 믄득 기춤 기치거든 <"구급간이방"(1489)에서>

'기춤', '기츰' 등은 여기에 '-다'가 붙어 '기춤다', '기츰하다' 등으로 쓰이었는데 이 말이 널리 쓰이면서 오늘날 '기춤/기츰 깇다'라는 표현이 사라졌다. 그리고 '기춤다/기츰다'가 '기춤/기츰 깇다' 대신에 사용됨으로써 '깇다'라는 동사도 사라졌다.
    그런데 옛날에는 '감기'를 '고뿔'이라고 했었다. '고뿔 들었다'고 해서 '고뿔'이 감기를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로 흔히 사용되었던 것이다. '고뿔'은 옛말에서는 '곳블'로 '고〔鼻〕+ ᄉ(속격 조사) + 블〔火〕'의 구성이었는데, 이것이 '곳불'로 원순 모음화되었다가 뒤의 음절 초성이 앞 음절의 'ᄉ' 때문에 된소리로 된 것이다. 곧 이 말은 비염에 걸려 코에 불이 난다는 의미 때문에 생긴, 정말 재미있게 표현된 단어로 16세기부터 출현한다. 일찍부터 한 단어로 굳어진 것이다. 그래서 '고'가 '코'로 유기음화되었어도 표준어에서는 '코뿔'이라고는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방언에 따라서는 '코뿔'이라고 하는 지역도 있지만. 문헌상에서 '콧블', '코블', '코', '콧' 등으로 출현하는 경우가 없다. 마치 '갈(刀)'이 '칼'로 유기음화되었어도 '갈다'는 그대로 남아 있는 것처럼.

그 집안 사히 다 그  그모도록 곳블도 만나디 아니며 다 가짓 쟝셕 귓것도 피리라 <"분문온역이해방"(1542)에서>
害鼻淵 곳불다 <"동문유해"(1748)에서>

그러면 '감기'라는 단어는 언제 생겨난 말일까? '감기'는 '感氣'의 한자어이지만 우리나라에서 만든 한자어다. 오래전부터 쓰이었던 것으로 '감기(感氣)'의 한자음 '감긔'로 나타난다. 처음 나타나는 것은 18세기 말이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감기'를 '감모'(感冒)라고 표현했던 것으로 보인다.

感冒 감긔드다 <"방언집석"(1778)에서>

혹자는 이 '감기(感氣)'를 일본 한자로 알고 있기도 한데 '감기'에 해당하는 일본 한자는 '풍사(風邪)'이다. 오늘날 '고뿔'에 비해 '감기'가 더 널리 쓰이고 있어 '고뿔'이 조만간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어도 우리나라에서 만든 한자어로 대치된 것에 그나마 만족해야 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