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 특집

'아리랑치기'

김강출(金江出) / 국립국어연구원

서울 강남의 밤거리에서 만취한 사람을 상대로 금품을 빼앗는 '아리랑치기'라는 범죄에 대한 보도를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보았다. 그런데 그런 범죄 수법을 왜 굳이 '아리랑치기'라고 부를까. 매우 거슬리는 표현이다. 그런 명칭을 사용해야 할 이유가 딱히 있는 것도 아닌 것 같다. 뒷부분의 '치기'라는 말은 물건을 날쌔게 훔친다는 의미에서 썼다지만 그 앞에 '아리랑'은 왜 붙인 것일까. 내가 아는 아리랑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단어 중 하나며 가장 한국적인 민요의 제목이기도 하다."

위 글은 최근 모 일간지에 실린 어느 독자의 글을 일부분 인용한 것이다. '아리랑치기'라는 단어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져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이와 같은 생각을 해 보지 않았을까 싶다.
    사전 미등재어인 '아리랑치기'가 언제 누구에 의해서 처음 만들어져 쓰였는지 명확하게 밝힐 수는 없지만 이 단어는 '아리랑 + 치기'로 분석되는데 이때의 '치기'는 '치다〔擊〕'라는 동사의 어간에 명사형 어미 '-기'가 결합하여 이루어진 말일 것이다. 그렇다면 '아리랑'이 가리키는 것은 무엇일까? '아리랑치기'가 '밤거리에서 취객의 몸을 뒤져 금품을 훔치는 행위. 또는 그런 사람'이라는 뜻을 갖는 말이고 보면 아마도 '아리랑'은 '취객(醉客)'을 뜻하는 은어가 아닌가 한다.
    문제는 '치다'라는 동사에 '타인의 물건을 남몰래 훔치다'라는 뜻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어느 국어사전에서도 '치다'라는 동사 항목이 이러한 의미로 풀이되지 않았다. 그런데 "표준국어대사전"을 비롯하여 몇몇 사전에 '날치기, 소매치기 따위의 행동이 날쌘 좀도둑이나 그 무리'라는 뜻의 '치기배(--輩)'가 올라 있다. 의미상 '치기배'의 '치기'는 '날치기', '소매치기', '오토바이치기', '차치기' 등과 같은 단어들에 보이는 '치기'와 같은 말일 것이다. 그렇다면 '치기'는 '날쌔게 남의 금품을 훔쳐내는 일. 또는 그런 사람' 정도를 뜻하므로 '치- + -기'와 같이 분석되는 말이라 하더라도 '치다'라는 동사와는 의미상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날치기', '소매치기', '오토바이치기', '차치기' 등과 비슷한 말로는 '아리랑치기' 외에 '퍽치기', '넷치기' 등을 더 들 수 있다. 그러나 이때의 '치기'는 전자와 비교해 보면 사뭇 그 의미가 다르게 쓰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날치기', '소매치기', '오토바이치기', '차치기' 등에서의 '치기'는 '날쌔게 금품을 훔쳐 달아나는' 것을 뜻하지만 '아리랑치기', '퍽치기' '넷치기' 등에서의 '치기'는 '날쌔게 금품을 훔쳐 달아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설명하면 '소매치기'가 단순히 남의 소매를 툭 쳐서 그 속에 든 금품을 날쌔게 훔쳐 달아나는, 그나마 최소한의 양심은 남아 있는 '날쌘 좀도둑'이라면 '아리랑치기'는 취객의 주머니를 이리저리 뒤져서 금품을 훔친 다음 태연히 사라지는 '비양심적인 좀도둑'을 뜻하는 것이다. '퍽치기'도 쇠파이프나 각목 따위로 취객을 폭행한 뒤에 금품을 강탈하는 밤거리의 흉악한 '노상강도'를 뜻한다. 더구나 '넷치기'는 한낱(?) '날쌘 좀도둑'이 아닌 '(인터넷을 이용하는) 지능적인 사기꾼'을 뜻한다. 본래 '치기'는 '날쌔게 남의 금품을 훔쳐내는 일. 또는 그런 사람'일 뿐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을 부축하는 체하며 슬며시 그의 주머니를 이리저리 뒤진다거나, 그런 사람을 상대로 쇠파이프나 각목 따위를 휘둘러 상해를 가하고 금품을 터는 쩨쩨하고 비양심적인(?) '좀도둑'을 가리키는 말이 분명 아니었다.
    사회가 변화함에 따라 언어도 변한다. 사회가 점점 더 흉포화하고, 최소한의 양심도 저버리는 비양심적인 사회가 될수록 그러한 사정이 고스란히 일상언어 속에도 녹아드는 것이다. 어쩌면 술 한잔에 시름을 잊는 그런 낭만은 점점 더 찾아보기 힘들어질 것이다. 혹시라도 밤거리에서 '퍽치기'를 당하면 어떡할 것이며, 밤늦은 시각에 만취한 친구나 동료를 부축해 주다가 '아리랑치기'로 오인을 받는 봉변은 어찌 감당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