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 특집

피동 표현과 국어 순화

이대성(李大成) / 국립국어연구원

요즘 한 일간 신문에서는 우리말을 바로 쓰자는 취지의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그 내용의 일부가 국어 순화를 주제로 한 것인데, 주로 우리말에서 흔히 쓰이는 영어 투나 일본어 투 표현에는 이러이러한 것들이 있으니 그러한 표현은 쓰지 말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 칼럼 가운데에 '이루어지다', '요구되다' 따위는 영어 투이므로 삼가야 한다는 주장도 실려 있다. 즉 이런 표현들은 원래부터 우리말에 있던 것이 아니라 서구 문물이 대량으로 유입된 이후에 갑자기 사용 빈도가 높아졌다는 것이며, 따라서 우리말의 본래 모습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러한 표현들을 삼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어지다'나 '-되다'라는 말이 최근 들어 갑자기 사용 빈도가 높아진 것이 아니라 옛날부터 사용해 온 표현 방법이라는 점을 밝혀서 국어 순화 운동의 일부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 '-어지다', '-되다' 따위는 우리 고유의 피동 표현
    우리말에서 피동의 뜻을 나타내는 방법에는 '-이-', '-히-', '-리-', '-기-' 따위의 접미사를 이용한 방법과 '-어지다'를 이용한 방법과 '-되다', '-당하다', '-받다' 따위를 이용한 방법 들이 있다. 이는 영어의 수동태와는 그 방법이 다른 것으로 예전부터 우리말에서 흔히 사용해 온 방법이다. 즉 요즘 우리말의 피동 표현에 자주 쓰이는 '-어지다'와 '-되다'는 서양 문물의 도입과 영어의 유입으로 인해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표현이 아니라는 말이다. 아래의 예문을 보자(예문(1)의 '-어디다'는 '-어지다'의 옛말임).

(1) ᄀ. 온 즘이 듣고 고리 다 려디 니 <"남명집언해"(1482)에서>
ᄂ. 긔혈이 얼의여 플어디디 아니모로 더데 더듸 러디고 죵긔 나니라 <"언해두창집요"(1608)에서>
(2) ᄀ. 이 공번되미 이러니 진실로 엇기 어렵도다 <"낙선일"(1700년대)에서>
ᄂ.  신식을 젼미 지쳬될가 념려  업고 <"이언해"(1875)에서>

우리말에서 '-어지다'나 '-되다', '-받다', '-당하다' 따위는 피동의 뜻을 나타내는 데 매우 효과적인 수단으로 쓰인다. 왜냐하면 피동의 접미사가 붙을 수 있는 용언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이러한 말들로 피동 표현을 대신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피동 표현은 능동적인 표현만큼 우리의 언어생활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할 뿐만 아니라, 피동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여 능동적인 표현으로 바꾸면 그 의미가 오롯이 전달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러한 표현 방법들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잘 사용하느냐가 중요한 문제이지 영어에 이런 표현이 많다고 해서 무조건 영어 투이므로 사용을 삼가야 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
    일례로 월드컵 대회 이후에 널리 쓰이고 있는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말을 들 수 있다. 이 말은 '꿈을 이루자'나 '꿈을 이루길 바란다'처럼 바꾸려는 사람도 있으나 이렇게 바꾸기 보다는 그냥 '꿈은 이루어진다'로 하는 게 제일 좋다고 본다.

◆ 중복된 피동 표현은 삼가야
    국어를 순화하는 면에서 피동 표현에 관하여 문제를 삼을 만한 것은 '이루어지게 되다', '요구되어지다' 등과 같이 피동의 뜻이 중복되어 나타나는 표현을 쓰는 경우와 '발전되다/발전하다'나 '생각하다/생각되다'와 같이 '-되다'가 붙건 '-하다'가 붙건 그 의미의 차이가 없는데도 굳이 '-되다'를 붙인 표현을 쓰는 경우이다. 이는 불필요한 표현을 덧붙임으로 해서 의사소통과 국어 교육에 혼란을 일으킬 소지가 있으므로 방송이나 일반 출판물 등에서 쓰지 못하도록 계도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루어지다'나 '요구되다'와 같이 본래 우리말 어법에 어긋나지 않는 것까지 다른 말로 고쳐야 한다는 것은 표현의 풍부성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3) 인간은 환경에 의하여 성격 형성이 이루어지게 된다(→이루어진다).
(4) 미래를 살아갈 젊은이들에게는 항상 진취적인 사고와 적극적인 행동이 요구되어진다.(요구된다).
(5) 형의 사업은 최근 눈에 띄게 발전되고(→발전하고) 있다
(6) 누구나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된다(→생각한다).

이처럼 우리말의 고유성을 살리기 위한 노력인 국어 순화 운동이 지금보다 더욱 전문성을 띠려면 우리말의 역사를 꼼꼼히 살피는 연구가 먼저 이루어져야 하며 문제가 되는 낱말이나 표현이 우리말 표현의 풍부성을 살리고 고유성을 유지하는 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객관적으로 살펴보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