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 세리머니'와 '득점풀이'
정희원(鄭稀元) / 연세대학교
지난 6월 한 달 내내 온 국민을 열광케 했던 월드컵 축구 대회는 우리나라가 4강에 진출하는 쾌거를 기록하고 막을 내렸다. 대회 기간 선수들의 멋진 경기 모습 못지않게 관중들의 눈길을 끈 것은 득점 후에 펼쳐진 화려한 '골 세리머니'였다. 세네갈 선수들의 아프리카 민속춤 동작도 인상적이었고 독일 클로제 선수의 공중제비도 독특했지만, 가장 화제가 되었던 것은 우리나라 선수들이 펼쳐 보인 소위 '오노 세리머니'였다. 지난 동계 올림픽 대회에서 김동성 선수가 오노 선수의 과장된 몸짓 탓에 실격, 금메달을 차지하지 못했던 것을 재연한 이 독특한 '골 세리머니'는 두고두고 화제가 되었다. 그런데 그 이튿날 이 소식을 전하는 신문들을 살펴보면 영어 ceremony의 우리말 표기가 '세리머니', '세러머니', '세리모니', '세러모니' 등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 있다.
이 네 가지 형태 중에서 어느 것이 외래어 표기법에 맞는 것일까? 놀랍게도 네 가지 모두 외래어 표기법에 어긋남이 없는 표기이다. 이것은 우리 외래어 표기법이 비체계적이어서가 아니라, ceremony가 영어에서 여러 가지로 발음되기 때문이다. 우리말 외래어 표기법의 큰 원칙은 '현지 발음에 따라 적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을 적용하기 위해 ceremony의 발음을 영어 사전에서 찾아보면 [serə mouni], [serimouni],
[serəməni],
[seriməni]의 네 가지를 모두 제시하고 있다. 이들을 국제 음성 기호와 한글 대조표에 따라 적으면 '세러모니', '세리모니', '세러머니', '세리머니'가 된다. 각 언론사에서는 이들 여러 가지 발음 중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각기 다른 표기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혼란을 없애고자 월드컵 축구 대회 기간에 열린 정부 언론 외래어 심의 공동 위원회에서는 이 말의 표준 표기를 주요 안건으로 다루었다. 사실상 네 가지 모두 표기법 원칙에 맞는 것이어서 그중 하나를 표준형으로 선택하면 되는 것이었다. 네 가지 표기형 중에서 각종 포털 사이트 검색 결과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골 세리머니'를 표준으로 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이 말의 사용을 결정하기 이전에 점검해야 할 사항이 있었다. '골 세리머니'라는 말이 국어 생활을 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외래어인가 하는 점이다. 즉 이 말이 '텔레비전'이나 '버스' 따위처럼 부득이하게 들여다 써야 하는 말인지, 쉽게 그 뜻을 담아 낼 수 있는 적절한 우리말 표현은 없는지 점검해 볼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사실 운동 경기 용어에는 지나치게 많은 외래어들이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지적에 따라 일부 뜻있는 언론에서는 '어시스트', '코너킥', '페널티 킥'이란 말 대신 '도움주기', '구석차기', '벌칙차기' 같은 말들을 사용해 왔던 터라 회의에 참가한 위원들은 모두 이러한 제안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게다가 '골 세리머니'라는 말은 영어에는 있지도 않은 표현이라는 점도 고려되었다. 논란 끝에 '골 세리머니' 대신 '득점 뒤풀이'라는 순화 용어를 사용하기로 하였다. '뒤풀이'의 본래 의미는 어떤 행사가 모두 끝난 다음에 베풀어지는 것이므로 경기 도중에 하는 '골 세리머니'의 뜻으로는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있었다. 그러나 자꾸 사용해서 익숙해지면 문제없으리라는 판단 아래 '득점 뒤풀이'를 최종적으로 선택하였다. 즉 부득이하게 ceremony라는 외래어를 사용해야 하는 경우에는 '세리머니'로 통일해 쓰지만 '골 세리머니'는 가능하면 '득점 뒤풀이'로 바꾸어 쓰도록 하자고 결정한 것이다.
이제 4년 후에 다시 열릴 월드컵 축구 대회 때에는 국적 불명의 '골 세리머니' 대신 누구나 알기 쉬운 '득점 뒤풀이'라는 말이 널리 쓰이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