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극적이고 부풀려진 말들
최인호(崔仁鎬) / 한겨례 교열부장
몇해 전 연평도 앞바다 이른바 북방 한계선을 두고 신경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남북 해군 경비정 사이에 위협 시위와 함께 총포 싸움을 치른 적이 있다. 그 과정에서 북방 경비정 한 척이 침몰했는데, 이를 두고 남쪽 언론들은 '서해 교전, 연평 해전, 연평 대첩' 따위로 일컬었다. 그중에 즐겨 쓴 말이 '연평 대첩'인데 400여 년 전 임진왜란 때의 '한산 대첩'이나 '노량 대첩', 일제 때의 '청산리 대첩' 이후 잘 듣지 못하던 고색창연한 말인데도 언론들은 한사코 이 말을 썼다. 그러나 이 말은 '분단의 비극과 상대'를 고려하지 않은 말이다.
그런데 이번 여름 들머리인 지난 6월 29일 비슷한 곳에서 다시 남북 해군 사이에 충돌이 벌어졌다. 북쪽이 먼저 쏜 총포에 맞아 시위를 벌이던 남쪽 경비정이 부서져 가라앉고, 정장을 포함해 넷이 전사하고 많은 군인이 다쳤다. 이를 두고 언론들은 '서해 교전' 정도로 부르는 데 그쳤다. 상당수 언론과 국민 사이에 '응징론'이 들끓기도 했다. 남북 사이에 벌어진 이 두 사건에서 말 가려 쓰기가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와는 좀 다르지만 언론에서 '싸움, 전쟁'이 들어가는 말을 다룰 때 마음에 마땅찮은 경우가 잦다. 우선 '전쟁'이란 말을 너무 허투루 쓰는 일이 그렇고, 싸움에는 늘 상대가 있는데 이것이 말을 복잡하게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런 말들은 그나마 단순하여 말 짜임새가 주는 부자연스러움은 덜하나 아무데나 '전쟁'을 붙여 자극하고 과장하는 버릇을 부추기는 게 문제다.
이런 말은 '벌이는, 치르는' 등의 관형어 대신, 다른 것과 비교하거나 기준으로 삼는 대상임을 나타내는 격 조사인 '와'와 관형격 조사 '의'를 붙여 만든 이은말로서 짜임새가 어색하고 뜻이 복잡해졌다. 지난해 미국 '9·11 테러' 때 특히, '대테러 전쟁', '테러 응징 전쟁', '테러와의 전쟁'이란 말을 많이 썼는데 문법 이전에 번역투 냄새가 짙게 배어 있다.
한편으론 '범죄와의 전쟁'을 치안 당국에서 선포한다면 막강한 경찰력(공권력)이 개인 폭력배나 그 조직을 대등한 상대로 삼아 벌이는 싸움이 되니, 소가 웃을 일 아닌가. 이런 경우 '범죄 소탕'이나 '범죄 없애기', '범죄 줄이기', '폭력배 잡아들이기' 따위로 말을 바꾸거나 정도를 낮추어 쓰는 것이 걸맞을 것이다. 사물을 될수록 과장하여 나타내려는 풍조가 사람의 속성이긴 하지만, 특히 그것을 힘센 쪽이나 언론이 자주 쓰면 사회적인 불신을 부르게 된다.
한편으로는, 나라 안팎이 두루 대립과 주도권, 생존권 싸움으로 얽혀 있어 이를 전달하고 보도하는 말조차 전투적이 되어 가는 경향이 있다. 그럴수록 한 걸음 물러서서 사안에 적절한 말을 찾아내고, 한 차례 에두르거나 달리 꾸며 가다듬어 가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