띄어쓰기의 이해

어미와 의존 명사

이운영(李云英) / 국립국어연구원

국어의 띄어쓰기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물으면 많은 사람들이 모양은 같은데 띄어쓰기가 다른 경우가 있어서라고 대답한다. 즉 동일한 형태의 단어 구성인데 이 글과 저 글의 띄어쓰기가 다르다는 얘기이다. 단어의 형태만 보면 이것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러한 단어들이 쓰인 문장을 좀 더 살펴보면 형태만 같지 실은 쓰임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겉으로 드러난 형태는 같지만 의미나 쓰임이 달라 띄어쓰기가 달라지는 예는 어미와 의존 명사, 조사와 의존 명사 사이에서 가장 많이 나타난다. 이번 호에서는 먼저 어미와 의존 명사에 대해 알아보고 다음 호에서 조사와 의존 명사에 대해 살펴보겠다.

(1) ㄱ. 철수가 학교에 가는데 영희가 쫓아왔다.
ㄴ. 철수가 가는 데 영희도 쫓아갔다.
(2) ㄱ. 누가 먼저 떠났는지 모르겠다.
ㄴ. 고향을 떠난 지 십 년이 넘었다.
(3) ㄱ. 서무과에서 통보해 온바 이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ㄴ. 서무과에서 통보해 온 바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위의 각 예에서 밑줄 친 부분의 '데, 지, 바'는 같은 형태인데도 예문 (ㄱ)에서는 모두 앞 단어와 붙어 있고 예문 (ㄴ)에서는 모두 떨어져 있다. 이는 바로 의미나 쓰임이 다르기 때문이다. 즉 예문 (ㄱ)의 '-데, -지, -바'는 모두 어미의 일부분이라 앞 단어에 붙여 쓴 반면 예문 (ㄴ)의 '데, 지, 바'는 모두 의존 명사로 앞 단어와 띄어 쓰고 있는 것이다.
    먼저 (1ㄱ) '가는데'의 '-는데'는 앞의 문장과 뒤의 문장을 연결해 주는 어미로, '가는데'는 '가고 있는데'로 바꾸어도 의미에 별 차이가 없다. 반면 (1ㄴ)의 '가는 데'에서 '데'는 장소를 나타내는 의존 명사이다. 따라서 이 경우의 '가는 데'는 '가는 곳'으로 바꿀 수 있으며 '데' 뒤에 '에'를 붙여도 자연스럽다. (2ㄱ) '떠났는지'의 '-는지'도 역시 연결 어미인 반면 (2ㄴ)의 '지'는 의존 명사이다. 이때 '지'는 어떤 일이 있었던 때로부터 지금까지의 기간을 나타내며 뒤에 항상 시간과 관계된 표현이 온다. (3)의 예도 마찬가지이다. (3ㄱ)의 '온바'에 나타나는 '-ㄴ바'는 연결 어미로 이때의 '온바'는 '와서' 정도로 바꿀 수 있다. 반면 (3ㄴ)의 '바'는 의존 명사로 통보해 온 내용을 가리키고 있다. 이때에는 '바'를 '사실', '내용' 등으로 바꾸어도 의미에 차이가 없다.
    이렇게 어미와 의존 명사가 유사한 형태라 띄어쓰기에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예를 더 살펴본다.

(4) ㄱ. 지금쯤 후회할걸.
ㄴ. 후회할 걸. 왜 그랬어.
(5) ㄱ. 밥 먹을 기운도 없으리만큼 지쳤다.
ㄴ. 밥 먹을 기운도 없을 만큼 지쳤다.
(6) ㄱ. 밥 먹듯 거짓말을 한다.
ㄴ. 밥을 먹은 듯 배가 부르다.

위의 예에서도 밑줄 친 부분을 보면 예문 (ㄱ)은 모두 붙여 썼고 예문 (ㄴ)은 모두 띄어 썼다. 앞서 살펴본 것과 마찬가지로 예문 (ㄱ)의 '-ㄹ걸, -으리만큼, -듯은 모두 어미이고 예문 (ㄴ)의 '거, 만큼, 듯은 의존 명사이기 때문이다. (4ㄱ)의 '-ㄹ걸'은 화자의 추측을 나타내는 종결 어미이고 (4ㄴ)의 '걸'은 의존 명사 '거'와 조사 'ㄹ'이 결합한 형태이다. (5ㄱ)의 '-으리만큼'과 (5ㄴ)의 '만큼'은 모두 정도를 나타낸다. 하지만 (5ㄱ)의 '-으리만큼'이 '없-'이라는 형용사 어간에 직접 붙은 것과는 달리 (5ㄴ)의 '만큼'은 '없을'이라는 형용사의 관형형 다음에 나타나고 있다. 예문 (6)도 비슷한 경우로, (6ㄱ)의 '-듯'이 '먹-'이라는 어간에 직접 붙어 있는 반면 (6ㄴ)의 '듯'은 '먹은'이라는 관형형 뒤에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예문 (5), (6)과 같은 경우에는 의미보다는 앞에 오는 단어의 형태에 따라 띄어쓰기가 달라진다고 할 수 있겠다.

※ 지난 호에 접미사 '-시키다'의 예로 제시한 '취소시키다'는 "동생에게 극장 예약을 취소시켰다."에서처럼 다른 사람에게 취소를 하도록 한 경우에 쓰이는 것입니다. "나는 친구와의 약속을 취소했다(○)/취소시켰다(×)."에서처럼 자신이 직접 취소를 하는 경우에는 '취소하다'를 쓰는 것이 맞고 '취소시키다'를 쓰는 것은 잘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