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글 쓰기

군살 빼고 혹 떼고

김희진(金希珍) / 국립국어연구원

요즘 신문이나 방송을 보면 하루도 빠짐 없이 다이어트에 관한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다. 실제로 몸에 군살이 붙게 되면 거동이 불편하고 건강에도 좋지 않기 때문에 필요 없는 살을 빼고 균형 잡힌 몸매를 만드는 다이어트는 어느 정도 필요한 일이라 하겠다.
    글에서도 덕지덕지 군살이 붙고 혹까지 달리면 읽기에도 성가실뿐더러 군살과 혹에 가려 필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데에 혼란을 줄 소지가 있다. 8월에 나온 신문 기사에서 이에 해당하는 예를 찾아본다.

(1) 석가탄신일에는 절 떡을 들고 경찰서를 찾아가 경찰과 피의자에게 돌렸다. <ㄷ신문, 8. 12. 48면>
(2) 지금은 여가 시간에 신을 수 있도록 장병들에게 운동화가 지급되고 있으나... <ㅅ신문, 8. 15. 31면>
(3) 야구와 축구의 판이하게 다른 관중 계산법을 지적해 프로 야구를 최고의 인기 스포츠로 성장시킨... <ㄷ신문, 8. 6. 39면>
(4) 파월 장관과 백 외무상은 15분간 커피를 마시며 양측 현안 문제를 협의했다. <ㅁ신문, 8. 1. 8면>
(5) 사진은 팬들이 만원사례를 이뤄 올 시즌 관중 폭발을 예고한 지난달 7일 성남 일화와 포항 스틸러스의 K-리그 개막전. <ㅅ신 문, 8. 14. 14면>
(6) 병역 논란은 검찰이 '녹음 테이프'에 등장하는 김 씨 목소리의 진위 여부를 가리는 성문(聲紋) 분석에 들어감으로써 사실 확인 에 접근하고 있다. <ㅈ신문, 8. 14. 2면>

 

(1) 우리가 부모님 '생신(生辰)'을 '생신일'이라고 하지 않듯이 이 자리에서도 '탄신일' 아닌 '탄신(誕辰)'이라고 했어야 했다. '탄신'이 '임금이나 성인이 태어난 날'인데도 '일(日)' 하나를 더 붙여 번거로울 뿐만 아니라, '탄신'이 곧 '탄생'이라고 오해하기 쉽게 되어 버렸다. 나라에서 정한 기념일 이름을 그대로 옮겼기 때문에 기사 작성자의 책임이라고 하기는 어렵겠으나, '생일(生日)-생신-탄신'순으로 점차 높여 이른다는 사실은 기억해 두자.
(2) '여가(餘暇)'는 '일이 없어 한가로운 시간'이다. 그러기에 '여가 선용'이니 '여가 활동'이니 하지 않는가.
(3) '판이(判異)하다'는 '비교 대상의 성질이나 모양, 상태 따위가 아주 다르다'다. "판이하게 다르다."라고 쓴 이는 '판이하게'를 '아주, 상당히, 매우, 퍽' 정도의 뜻으로 오해한 것이다.
(4) '현안(懸案)'은 '이전부터 의논하여 오면서도 아직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문제나 의안'으로서, '걸린 문제'로 순화된 말이다. '국정 현안', '주요 현안'이란 용례가 있듯이 '현안' 뒤에 '문제'가 덧붙을 이유가 없다.
(5) '만원(滿員)'은 '정(定)한 인원이 다 참'이고, '만원사례(滿員謝禮)'는 '만원을 이루게 해 주어서 고맙다는 뜻으로, 극장 등 흥행장에서 만원이 되어 관객을 더 받지 못하겠다는 것을 완곡하게 이르는 말'이다. '사례'는 '언행이나 선물 따위로 상대에게 고마운 뜻을 나타냄'이다. 선거에서 이긴 사람이 유권자들에게 '당선사례'를 하는 것이 한 예다. '만원사례'를 '만원'과 같은 뜻으로 잘못 알고 쓰는 것이 문제다.
(6) '정말인지 아닌지'를 가린다면 '진위(眞僞)'로 충분한데 왜 '여부(與否)'도 덧붙이는가. '참인지 거짓인지'를 거쳐 '그런지 아닌지'의 단계까지 무슨 수로 가리는가. 여기에서 보인 '여부'는 (5)의 '사례'와 함께 '군살' 정도가 아니라 없애야 할 '혹'에 빗댈 수 있다. '여부'를 정 쓰고 싶으면 '사실 여부'나 '일치 여부'라고 고치면 된다.
    제 값어치 외에 거저 조금 더 얹어 주는 '덤'이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영양 과잉이나 영양 부조화로 생긴 군더더기 살이나 혹이 건강한 생활을 영위하는 데에 부담이 된다면 살을 빼고 혹을 도려내야 하듯이, 글 속에 숨어 있는 군더더기도 간약성(簡約性)과 명료성을 유지하는 데에 걸림돌이 된다면 적절히 솎아 내고 떼 내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