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와와 '잔나비'
홍윤표(洪允杓) / 연세대학교
우리 동양 사람들은 천간(天干)을 따져서 나이를 띠로 말하곤 한다. 사람이 태어난 해를 지지(地支: 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의 속성으로 상징하여 말하는 것이다. 지지 중에 '신(申)' 자가 붙은 해(예컨대 '甲申'년)에 태어난 사람을 '원숭이띠'라고 하지만, 이것은 요즈음 젊은 사람들이 하는 말이고 노인들은 '잔나비띠'라고 한다. 동물원에 가서 직접 그 동물을 가리킬 때에는 '원숭이'라고 하면서도, 유독 띠를 따질 때에는 '잔나비'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언어 관습일까? 뜻이 다르거나 뜻이 같더라도 사용되는 환경에 따라 달리 사용되는 것일까? 그리고 왜 원숭이를 '잔나비'라고 했을까?
옛 문헌에는 17세기까지도 '원숭이'라는 단어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 이전에는 원숭이를 '납'이라고 하였다. "훈민정음 해례"(1446)에 '납 爲猿'이라는 기록이 최초의 용례다. '납'은 16세기 말까지 쓰이다가 17세기 초에 와서 '납'은 사라지고 '납'이 등장한다.[한문 진납 <"동의보감"(1613)에서>] '납'에 접미사 '-이'가 붙어 '납이' 또는 '나비'로도 쓰이었는데, 대개 18세기 이후부터이다.
여기에서 '납'은 분명히 ''과 '납'('나비' 또는 '납이')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이 동사 어간 '-'에 관형형 어미 '-ㄴ'이 통합된 것인지, 아니면 명사 ''에 속격조사 'ㅅ'이 붙은 ''이 그 뒤에 오는 '납'의 'ㄴ' 때문에 동화되어 ''으로 된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일반적으로 '잰납'은 원숭이를 뜻하는 '납'에, '재빠르다'나 '잽싸다'의 '재'처럼 '민첩하다'는 의미를 가진 '재'의 관형형 '잰'이 붙어서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되어 왔다. 그러나 '민첩하다'는 뜻을 가진 동사 어간은 '지-'가 아니라 '재-'이어서 그렇게 결론을 내리기가 어렵다. 오히려 명사 ''에 속격 조사 'ㅅ'이 붙은 것으로 해석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이 '지'는 '잿빛'의 '재'로 판단된다. 원숭이의 털 색깔이 '잿빛'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은 '납'이 '납'으로도 나타나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이 '진납'은 17세기 초에 간행된 중간본 두시언해에 나타난다. ''는 '믈, 블, 빗' 등으로 많이 나타나서 이러한 가능성을 높여 준다.
이 '나비'가 오늘날 '잔나비'로 굳어졌다. 문세영 선생의 "조선말사전"에도 '잔나비'는 '잣나비'를 찾아가 보라는 표시가 있는 것을 보면, '잔나비'가 된 때는 20세기의 40년대로 보인다.
'원숭이'란 의미를 가진 단어로 옛 문헌에 보이는 형태들은 '원승이', '원이', '원숭이' 등이다. 이 가운데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원승이'이고, 다음에 '원슁이', '원숭이' 순으로 등장하여서 오늘날까지 쓰이고 있다. '원승이'가 처음 나타나기 시작하는 시기는 18세기 말이다. '원이'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나타나는데, 아마도 한자 성(猩)에 견인된 것으로 판단된다. '원숭이'는 20세기에 와서야 보이기 시작한다. '원숭이'는 18세기에 와서 한자어인 '원(猿猩)이'가 생겨났고 '(猩)'의 음이 '승'으로 변하여('초싱'이 '초승달'로 되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원승이'가 되고 이것이 또 변하여서 오늘날 '원숭이'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
'원숭이'를 뜻하는 한자에는 '원(猿)', '미(獼)', '후(猴)', '원(猨)', '호(猢)', '손(搎)', '성(猩)' 등이 있는데 그들이 크기에 따라 달리 명칭을 붙인 것인지, 아니면 색깔에 따라 달리 분류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대신 이들을 구분하여 표시한 몇몇 문헌에서는 '성(猩)'은 '성성이'를, '원(猨)'은 '큰 원숭이'를, '후(猴)'는 '보통 원숭이'를, '미후(獼猴)'는 '진나비'라고 하여 '원(猿)'은 '원숭이'라 하고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아 그렇게 정확하게 구분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