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어원

'원숭이'와와 '잔나비'

홍윤표(洪允杓) / 연세대학교

우리 동양 사람들은 천간(天干)을 따져서 나이를 띠로 말하곤 한다. 사람이 태어난 해를 지지(地支: 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의 속성으로 상징하여 말하는 것이다. 지지 중에 '신(申)' 자가 붙은 해(예컨대 '甲申'년)에 태어난 사람을 '원숭이띠'라고 하지만, 이것은 요즈음 젊은 사람들이 하는 말이고 노인들은 '잔나비띠'라고 한다. 동물원에 가서 직접 그 동물을 가리킬 때에는 '원숭이'라고 하면서도, 유독 띠를 따질 때에는 '잔나비'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언어 관습일까? 뜻이 다르거나 뜻이 같더라도 사용되는 환경에 따라 달리 사용되는 것일까? 그리고 왜 원숭이를 '잔나비'라고 했을까?
    옛 문헌에는 17세기까지도 '원숭이'라는 단어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 이전에는 원숭이를 '납'이라고 하였다. "훈민정음 해례"(1446)에 '납 爲猿'이라는 기록이 최초의 용례다. '납'은 16세기 말까지 쓰이다가 17세기 초에 와서 '납'은 사라지고 '납'이 등장한다.[한문 진납 <"동의보감"(1613)에서>] '납'에 접미사 '-이'가 붙어 '납이' 또는 '나비'로도 쓰이었는데, 대개 18세기 이후부터이다.

猿 큰 나비 猴兒 나비 <"동문유해"(1748)에서>
猢猢 나비 <"방언유석"(1778)에서>
獼猴 나비 猿 원승이 <"광재물보(?)에서>

여기에서 '납'은 분명히 ''과 '납'('나비' 또는 '납이')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이 동사 어간 '-'에 관형형 어미 '-ㄴ'이 통합된 것인지, 아니면 명사 ''에 속격조사 'ㅅ'이 붙은 ''이 그 뒤에 오는 '납'의 'ㄴ' 때문에 동화되어 ''으로 된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일반적으로 '잰납'은 원숭이를 뜻하는 '납'에, '재빠르다'나 '잽싸다'의 '재'처럼 '민첩하다'는 의미를 가진 '재'의 관형형 '잰'이 붙어서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되어 왔다. 그러나 '민첩하다'는 뜻을 가진 동사 어간은 '지-'가 아니라 '재-'이어서 그렇게 결론을 내리기가 어렵다. 오히려 명사 ''에 속격 조사 'ㅅ'이 붙은 것으로 해석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이 '지'는 '잿빛'의 '재'로 판단된다. 원숭이의 털 색깔이 '잿빛'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은 '납'이 '납'으로도 나타나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이 '진납'은 17세기 초에 간행된 중간본 두시언해에 나타난다. ''는 '믈, 블, 빗' 등으로 많이 나타나서 이러한 가능성을 높여 준다.

 히 그니 나븨 소리 섯겟고 <"중간두시언해"(1632)의 권5에서>

이 '나비'가 오늘날 '잔나비'로 굳어졌다. 문세영 선생의 "조선말사전"에도 '잔나비'는 '잣나비'를 찾아가 보라는 표시가 있는 것을 보면, '잔나비'가 된 때는 20세기의 40년대로 보인다.
    '원숭이'란 의미를 가진 단어로 옛 문헌에 보이는 형태들은 '원승이', '원이', '원숭이' 등이다. 이 가운데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원승이'이고, 다음에 '원슁이', '원숭이' 순으로 등장하여서 오늘날까지 쓰이고 있다. '원승이'가 처음 나타나기 시작하는 시기는 18세기 말이다. '원이'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나타나는데, 아마도 한자 성(猩)에 견인된 것으로 판단된다. '원숭이'는 20세기에 와서야 보이기 시작한다. '원숭이'는 18세기에 와서 한자어인 '원(猿猩)이'가 생겨났고 '(猩)'의 음이 '승'으로 변하여('초싱'이 '초승달'로 되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원승이'가 되고 이것이 또 변하여서 오늘날 '원숭이'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

우마 나귀 원승이며 비들기와 게우 오리 가디가디 금슈 되야 욕기 즐겨고 <'인과곡'(1796)에서>
猿申 猿狌 원이 <"국한회어"(1895)에서>
원숭이 원 <"부별천자문"(1913)에서>

'원숭이'를 뜻하는 한자에는 '원(猿)', '미(獼)', '후(猴)', '원(猨)', '호(猢)', '손(搎)', '성(猩)' 등이 있는데 그들이 크기에 따라 달리 명칭을 붙인 것인지, 아니면 색깔에 따라 달리 분류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대신 이들을 구분하여 표시한 몇몇 문헌에서는 '성(猩)'은 '성성이'를, '원(猨)'은 '큰 원숭이'를, '후(猴)'는 '보통 원숭이'를, '미후(獼猴)'는 '진나비'라고 하여 '원(猿)'은 '원숭이'라 하고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아 그렇게 정확하게 구분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