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시의 이해

김영랑의 시어 '애끈한' 마음

김옥순(金玉順) / 국립국어연구원

님 두시고 가는 길의 애끈한 마음이여
한숨 쉬면 꺼질 듯한 조매로운 꿈길이여
이 밤은 캄캄한 어느 뉘 시골인가
이슬가치 고힌 눈물을 손끗으로 깨치나니
<10>

영랑(永郞) 김윤식(金允植, 1903~1950)은 심미적 시어(poetic diction)를 잘 사용하는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시집 앞부분에 "A thing of beauty is a joy for ever.­Keats­(아름다운 것은 영원한 즐거움이어라)"라는 글귀가 인용되어 있는 것에서도 나타나듯이 영랑의 시는 아름다움이라는 명제를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는 사라져 가는 우리의 고유어를 발굴하고 향토어인 전라 방언을 널리 사용함은 물론 독창적인 조어를 활용하는 등 국어의 심미적 가치를 개발하는 데 주력하였다고 평가된다.<김재홍, "한국현대시인연구", 일지사, 1986, 139쪽>
    제목 없이 번호로만 나타난 영랑의 시에서 '님 두시고'로 시작하는 이 시는 '사행소곡(四行小曲)'으로 기승전결 4행으로 되어 있으며 각 행은 4음보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 시는 다시 전후 각 2행씩 나뉘어 의미상의 단락을 이룬다.
    이 시에는 일반적으로 잘 나타나지 않는 '애끈한', '조매로운'이란 단어들이 나타나는데, "시어 사전"(김재홍, 고려대출판부, 1997)에 의하면 '애끈한'은 '창자가 끊어질 듯 슬프게, 애달프게'로, '조매로운'은 '조바심 나는, 초조하고 안타까운, 애절하고 간절한'으로 뜻풀이가 되어 있다. 전라남도 강진 사람인 영랑의 시어 '애끈한'이 "창자가 끊어질 듯 슬프게"란 뜻이라면 그 연원은 멀리 이순신 장군이 한산도에서 지은 시조에까지 올라간다고 본다. "한산 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의 종장 '남의 애를 끊나니'와 같은 선상에 이 단어가 놓여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즉 '애를 끊는다'는 '창자를 끊는다'이고, '애끈한'은 '애(창자)를 끊을 듯이 슬프게'란 뜻으로 변한 것이다. 이 '애끈한'은 그의 시집에서 세편, 네 군데에 나타난다.

"애끈히 떠도는 내음 <42>
수심 뜨고 애끈하고 고요하기 <42>
아담한 꿈 하나 여승의 호젓한 품을 애끈히 사라젓느니 <46>

시 '10, 님 두시고'에서 각 행마다 핵심어를 찾으면, 제1행은 '가는 길'이다. 즉 임을 두고 떠나는 길은 애끈한(창자가 끊어질 듯 슬픈) 마음이라는 것이다. 제2행의 핵심어는 '꿈길'이다. 그 꿈길은 한숨 쉬면 (땅이) 꺼질 듯한 '조매로운'(조바심 나는) 꿈길이다. 제3행의 핵심어는 '밤길', '시골 길'이다. 꿈은 밤에 꾸는 것이므로 꿈길에서 밤길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꿈속에 화자는 임과 이별하고 길을 떠나는데 그 밤길은 캄캄한 어떤 시골 길과 같다. 제4행에 오면 '이슬을 깨치며 걷는 길'이면서 꿈을 깨는 시점이 된다.

1행―가는 길(애끈하다)
2행―꿈길(조매롭다)
3행―밤길, 시골 길(캄캄하다)
4행―이슬을 (발끝으로) 깨치며 간다./ 꿈을 깨고 눈물을 손끝으로 닦는다.(운다)

이렇게 핵심어를 짚어 보니 이 시에는 꿈과 현실이 얽혀 있음을 알 수 있다. 꿈에 임을 두고 가는 길이 나타나면서, 캄캄한 시골 길을 간다. 그 꿈길은 애끈하고 조매로운 애절한 길이었다. 그 꿈을 깨고 보니 눈물이 흘러 손끝으로 닦는다. '깨친다'는 동사는 '이슬'과 '눈물'을 동시에 목적어로 삼고 있다. 이슬방울을 깨치는 것일 수도 있고 눈물방울을 깨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눈물을 '손끝으로' 닦는 행위는 눈물을 깨치는 행위이고, 밤길을 걸으면 '발끝으로' (풀잎에 맺힌) 이슬방울을 깨치게 되므로 '깨친다'는 동사는 양쪽 목적어를 다 포함하게 된다. 꿈길에서 시적 화자는 임과 이별하여 애끈하고(창자가 끊어질듯 슬프고) 조매로운(초조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캄캄한 밤중에 시골 길에서 발끝에 이슬을 깨치며 걷는 것과 같다고 느끼고 있다. 꿈에서 깬 화자는 손끝으로 눈물을 닦으며 모두 꿈이었음을 확인한다.
    이렇듯 이 시에서는 꿈속에서 이별하고 떠나는 길의 슬프고도 어두운 심상을 '애끈히' 보여 준다. 각 행의 감정이 '애끈하고, 조매롭고, 캄캄하고, 우는' 것으로 드러나는 점은 1930년대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느낀 시인의 감정을 그대로 반영하는 듯하고 또한 그의 비관적인 세계 인식을 나타내 주기도 한다. 한편으로 화자는 이 시를 통해 이 모든 일제 치하의 캄캄한 현실을 꿈을 깨듯 깰 수 있기를 바랐음을 함축적으로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