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글 쓰기

'너무'가 넘쳐 난다

김희진(金希珍) / 국립국어연구원

6월 말 주말 방송의 프로그램은 월드컵 대회에서 거둔 성과를 총정리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축구 전문가, 각계의 유명 인사(人士), 일반 시민 들이 모인 대담 형식의 프로그램에서 하는 발언 내용도 어느 방송사나 거의 비슷했다.

"(선수들이) 너무 잘해서 너무 자랑스러워요."
"너무 기쁩니다."
"히딩크 오빠, 너무 사랑해요.", "히딩크 감독님, 너무 멋있어요."
"월드컵을 너무 잘 치른 것 같아 너무 좋아요."
"대한민국 사람인 게 너무 감격스러워요."

그리고 특집 프로그램을 마치며 진행자는 속삭인다.

"너무나 행복했던 6월."

7월 들어 월드컵 대회에 관련한 프로그램이 아닌 데서도 '너무'가 넘쳐 나기는 마찬가지였다. 오지(奧地)에 다녀온 출연자에게 프로그램 진행자가 한마디 한다.

"아기를 안은 모습이 너무 잘 어울리는 것 같네요."

전국 노래 자랑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여성이 수상 소감을 밝힌다.

"엄마, 아빠, 친구들, 너무 고마워요."

'너무'는 '일정한 정도나 한계에 지나치게'라는 뜻으로, 결과적으로 원하지 않은 현상이 일어날 경우에 쓰는 말이다. '너무' 늦어 밤길을 가기가 어렵다든지, '너무' 어려워 문제를 풀지 못한다든지, '너무' 추워 얼어 버릴 것 같다든지, '너무' 멀어 찾아갈 길이 막연하다든지, '너무' 먹어 몸이 뚱뚱하다든지 하는 경우에나 어울리는 말이다. 그런데 '너무' 고맙고 좋아서, '너무' 기쁘고 감격스럽고 행복해서, '너무' 멋있고 잘 어울려서, '너무' 사랑해서, '너무' 잘하고 잘 치르고 자랑스러워서 무슨 심각한 문제라도 생겼다는 것인가.
    '너무'는 "일정한 기준, 정도 따위를 벗어나 지나다."라는 '넘다'에서 온 말이다. 정도를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이 있거니와 우리는 중용(中庸)이 중요함을 강조해 왔다. 그러기에 지나치게 보살피는 과권(過眷)이나 지나치게 칭찬하는 과포(過褒)를 경계하였으며, 다복(多福)을 탐하기보다는 지금 누리는 복을 살뜰히 아끼는 석복(惜福)을 취하도록 가르쳤다.
    그런데도 '너무'만 쓰기로 약속이라도 한 것일까. 제창(齊唱)하듯 아무 때나 아무 데서나 '너무'를 쓰는 것, 이것 너무하는 것 아닌가. '매우, 아주, 꽤, 참, 참으로, 퍽, 썩, 대단히, 상당히, 정말......' 이런 말들은 다 어디 갔을까? 이 말들은 이제 아예 쓰지 않을 참인가. 이젠 '부정적'인 데에 한하여 쓰이던 '너무'가 '긍정적'인 데에도 얼마든지 쓰일 수 있게끔 의미 영역이 확대된 것일까. 제헌절에 텔레비전 뉴스에서 부산 해운대에 온 외국인들이 "The beach is very clean and beautiful."라고 말한 걸 "해변이 너무 깨끗하고 아름다워요."라고 통역한 자막을 보일 정도까지 되었으니 말이다.
    세월과 함께 모습을 바꾸어 가는 게 언어의 역사성이라고는 하지만 이렇듯 '너무' 하나로 심하게 쏠림을 보게 되니, '매우, 아주, 꽤, 참, 참으로, 퍽, 썩, 대단히, 상당히, 정말......' 등 유의어 무리는 돌아보는 이 없이 내팽개쳐져 점차 제 설 자리를 잃고 그저 국어사전 한 귀퉁이에서 겨우 명맥이나 유지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앞선다.
    한 호텔 종업원이 유명 선수가 투숙했던 방의 침대 밑에서 선수가 신던 양말 한 켤레를 발견하자 "기분이 아주 좋아요." 하며 쑥스러워할 때, 그리고 한 포르투갈 교민이 대한민국 팀이 이기자 "한국의 위상이 높아져서 정말 기뻐요." 하며 흐뭇한 웃음을 지어 보일 때 매우 신선한 느낌을 받은 것은 비단 나뿐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