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시의 이해

김소월의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김옥순(金玉順) / 국립국어연구원

그립다
말을 할 
하니 그리워

그냥 갈 
그래도
다시 더 한 番......

저 山에도 가마귀, 들에 가마귀,
西山에는 해 진다고
지저귑니다.

압 江물, 뒷 江물,
흐르는 물은
어서 라오라고 라가쟈고
흘너도 년다라 흐릅듸다려.
<'가는 길', "진달내", 1925>

김소월(1902~1934)의 시 '가는 길'에서는 인접한 연 사이에서 은유적 상호 작용이 발생한다. 사람, 까마귀, 강물 들이 서로 겉으로 드러난 공통점이 없이 다만 인접한 문장들임에도 서로 간에 독자적이고도 동등한 은유적 연상 작용이 일어난다. 사람은 상상력을 통해 어떤 상황에서도 주어진 문맥 안에서 의미화가 가능하다는 리차즈(I. A. Richards)의 말처럼 병치 상황에서 나타나는 은유 작용을 볼 수 있다. 이 시에서 시인은 연인에게 구애를 할까 말까 망설이는 시적 화자의 독백 상황을 제시하면서 뒤에 나오는 자연물의 풍경 또한 시적 화자의 상황에 맞춰서 차별화되고 있다. 즉, 산 까마귀와 들 까마귀, 앞 강물과 뒤 강물의 분화이다. 일반적으로 '산 까마귀', '들 까마귀'라는 말은 있으나 '앞 강물', '뒤 강물'이란 표현은 이 시만의 개성적인 명칭으로 보인다.
    시적 화자인 남성 화자는 연인의 집 앞에서 망설이고 있다.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기 전에 느끼는 망설임과 불안의 심리 상태가 잘 나타나는데, 제1연에서 '그립다고 말을 할까'에서는 '말하지 말까'의 반대 감정이 함축되어 있고, 제2연에서 '그냥 갈까' 하는 말은 '그녀 집에 들를까'를 전제할 때 나오는 독백이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양면 감정 병존(ambivalence)의 심리 상태를 잘 나타낸 시이다.

그립다고 말을 할까/(말하지 말까)
(그녀 집에 들를까)/그냥 갈까

이 시의 시간은 해 질 녘의 한계 상황이다. 즉 해가 지기 직전의 짧은 시간 안에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루의 해 질 녘을 사람이 자신의 인생에서 선택할 수 있는 제한된 시기로 유추해 보면 어떤 촉박한 '시간의 모퉁이'에 시적 화자가 처해 있음을 알 수 있다. 고민하는 화자의 독백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괄호 안은 생략 부분이다.

① 그립다(고) 말할까/(생각)하니--------------(생각 1: 사랑의 고백 행위)
② 그립다---------------------------------(사랑의 감정이 밀려옴)
③ 그냥 갈까-------------------------------(생각 2: 행위의 보류)
④ 그래도/다시 더 한번 (말해 보자)------------(생각 3: 행위에 대한 욕망)

①은 연인을 만나 할 말을 미리 생각하는 장면이다. 할 말을 생각하니 ② 다시 그리운 감정의 욕구가 솟아나고 ③ 그 욕망을 억누르는 이성적인 판단이 앞서자 ④ 다시 연인을 만나 사랑을 고백하고 싶은 욕구가 솟아오른다. 이런 시적 화자의 복잡한 심리 상태는 제3연의 경치 묘사에서도 그대로 반복된다. 제3연에서는 "저 山에도 가마귀, 들에 가마귀"에서 구애하는 수컷 까마귀가 암컷 까마귀한테 서산에 해가 지니 빨리 우리의 둥지를 틀자고 지저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서로 사는 장소가 다른 산/들이라는 점에서도 아직 구애 중인 까마귀로 보인다.
    제4연에서는 앞 강물이 뒤 강물한테 명령형으로 '어서 따라오라'고 말하고 뒤 강물은 청유형으로 '어서 따라가자'고 말한다. 이런 문맥에서는 '어서 따라오라'는 명령형은 남성의 발화로 보이고 '어서 따라가자고' 하는 청유형은 다른 동반자에게 권하는 말로 보이는데 남자와 여자 사이의 동반자로는 자식밖에 없지 않을까. 그러므로 '어서 따라오라'고 말하는 강물은 '아버지 강물'이고 '어서 따라가자'고 말하는 강물은 '어머니 강물'로서 '자식 강물'에게 이르는 말이라 할 수 있다. 즉, '가족 강물'인 것이다. 이런 연인 까마귀의 관계나 '가족 강물'들의 정다운 행동들이 시적 화자와 유사한 상황으로 반복해서 일어나고 있다. 이들 비유 관계를 언술 은유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사람(남/녀)---------------------------산 까마귀/들 까마귀--------------------앞 강물/뒤 강물
시적 화자(남자)가-------------------------산 까마귀가-----------------------앞 강물이(아버지 강물)
(여자에게)-------------------------------들 까마귀에게---------------------뒤 강물에게(어머니 강물)
그립다 말할까/그냥 갈까-------------(둥지를 틀자고/말자고)------------------따라오라고/따라가자고(자식에게)
(남은 시간이 길지 않으니)----------------서산에 해가 지니---------------------자연의 이법에 따라
서둘러-----------------------------------서두르라고-----------------------어서 흐르자고
말하려 하고 있다----------------------------지저귄다------------------------권한다

이 시에서는 '말하는 행위'가 전면에 중요하게 드러난다. 말은 곧 행위인 것이다. 만나서 말하기를 선택할까 아니면 말하지 않고 그냥 갈까를 선택하려 망설일 때 같은 상황의 까마귀와 강물이 등가물(等價物)로 떠오른다. 까마귀는 까마귀끼리, 강물은 강물끼리 서로 대화를 나누며 시적 화자의 결정을 촉구하고 있다. 까마귀와 강물은 어서 자신들처럼 해가 지기 전에 보금자리를 마련하든가 아니면 보금자리를 포기하든가 하라는 결단을 촉구하고 있다.
    시적 화자는 지금 연인에게 '그립다'고 구애하지 않으면 영원히 연인을 얻을 수 없을지도 모르는데도 화자는 서둘러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아직도 망설이면서 시가 끝난다. 망설이는 상태로 남음으로써 이 시 속의 시간은 언제까지나 서산에 해가 지기 직전의 짧은 밝음의 상황이다. 이 시 속의 남성 화자 또한 영원히 늙지 않은 채 그의 연인에게 구애를 할까 말까 망설이며 서 있는 중이다. 까마귀들은 지저귀고 강물들은 어서 빨리 가자고 충고하며 흐르는 가운데 화자는 계속 아름다운 석양 속에 고민하며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