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말 사용과 2002 월드컵
이설아(李雪雅) / 국립국어연구원
우리 축구 선수들의 뛰어난 기량과 국민들의 열광적이면서도 질서정연한 응원 등 지난 6월에 우리가 개최한 월드컵 대회는 만점이라 해도 좋을 만큼 성공적이었다. 그러면 이번 월드컵 대회 중에 쏟아져 나온 우리말은 과연 몇 점이나 받을 수 있을까? 대한민국 팀의 축구 경기만큼 좋은 성적이라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러하지 못했다.
'신고합니다'에 제보된 것 가운데 방송이나 인터넷 등 대중 매체에서 월드컵 대회와 관련하여 잘못 말하거나 잘못 적은 것들을 모아 다음 글을 지어 보았는데 이 잘못들 대부분은 월드컵 대회 기간 중에 되풀이되었다.
월드컵이 코앞에 다가오자 참가국 선수단 입국 러쉬가 텔레비전을 통해 연일 보도되고 국민들은 설레이는 마음으로 개막을 기다렸다. 5월 31일 드디어 월드컵이 개막되고 상암 경기장은 관중들의 함성으로 뒤덮혔다. 그리고 한 달 동안 한국과 일본 곳곳에서는 브라질의 호나우두, 히바우두, 호나우딩요, 독일의 발락, 올리버 칸, 터키의 샤슈, 잉글랜드의 퍼디낸드 등 세계적 선수들이 실력에 걸맞는 멋진 축구 향연을 펼쳐 보였다. 한국 팀 또한 폴란드 전의 승리를 시작으로 승승장구했고 '대한민국 화이팅'을 외치는 국민들로 온 나라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한편 우리나라 팀의 경기 결과를 맞추면 각종 경품을 주는 행사가 줄을 잇기도 했다.
'참가국 선수단 입국 러쉬'는 문화 방송(MBC) 뉴스(5월 21일)에 나온 자막이다. 'rush'는 어말의 [∫]를 '시'로 적는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러시'로 적어야 한다. 더 나아가 외래어 '러시' 대신 '참가국 선수단 입국 한창'과 같이 바꾸면 굳이 외국어나 외래어를 사용하지 않고도 의미를 충분히 전달할 수 있다.
'설레이는 마음으로'는 서울 방송(SBS) 뉴스(5월 31일)에서 한 기자가 개막을 기다리는 관중들을 소개하며 한 말이다. '설레이다'는 '설레다'의 비표준어이므로 '설레는 마음으로'로 말해야 한다.
'함성으로 뒤덮혔다'는 문화 방송(MBC) 뉴스(5월 31일)의 개막식 소개 보도에 제목으로 나온 자막이다. '뒤덮였다'를 '뒤덮혔다'로 잘못 적었다.
'호나우딩요'는 한국 방송(KBS) 뉴스(6월 30일)에서, '발락'은 문화 방송(MBC) 뉴스(6월 27일)에서 자막으로 나온 것이다. 혼란을 막기 위해 지난 6월 3일에 국립국어연구원에서 '월드컵 출전 외국인 선수의 한글 인명 표기'를 정하여 알린 바 있다. 이에 따르면 원음에 가깝게 표기하는 원칙에 따라 '호나우디뉴'와 '발라크'로 각각 적도록 하고 있다. 월드컵이 끝난 지금도 뉴스 중에 이 두 가지 표기를 혼동하는 경우가 종종 눈에 띈다.
'걸맞는'은 한국 방송(KBS) 뉴스(5월 10일)에서 기자와 앵커가 실력에 걸맞은 축구 선수들의 몸값에 대해 소개하면서 쓴 말이다. '걸맞다'는 '작다', '좋다'와 같은 형용사이므로 어미 '-는'이 결합할 수 없다. '*작는', '*좋는'이 잘못인 것처럼 '걸맞는'도 잘못이다. '걸맞은'이라고 해야 한다.
'화이팅'은 문화 방송(MBC) 뉴스(6월 18일)에서 나온 자막이다. 'fighting'은 [f]를 'ㅍ'으로 적는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파이팅'으로 적어야 한다. '파일', '필름'을 '화일', '휠름'으로 적지 않는 것과 같은 경우이다. 더 나아가 '파이팅' 대신 '힘내라', '싸워라', '이겨라' 등과 같은 고유어를 사용할 수 있다. 국민들이 응원하면서 '대한민국 힘내라', '한국 이겨라' 등과 같은 우리말 구호보다는 '코리아 파이팅'을 더 많이 외쳤다는 사실은 못내 아쉽다.
'맞추면'은 한국 방송(KBS) 홈 페이지, 국민 카드 홈 페이지 등에서 축구 경기의 승패나 경기 결과를 맞히는 행사에서 쓰인 것이다. '맞추다'는 대상끼리 서로 비교한다는 뜻으로 '답안지를 정답과 맞추다'와 같이 사용하고, '맞히다'는 정답을 골라낸다는 뜻으로 '수수께끼에 대한 답을 맞히다'와 같이 쓴다.
특히 뉴스 방송 종사자는 국민들의 기대나 국민의 언어생활에 미치는 영향력 면에서 볼 때 바른 말 쓰기의 첨병이 되어야 한다. 혹 월드컵 기간 중에는 속보가 많고 흥분된 상태에서 방송을 해서 실수가 많았다고 변명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영향력이 큰 지상파 뉴스 방송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속보가 많아 교정을 거치지 않더라도, 흥분 상태에서 말을 하더라도, 우리말을 잘못 쓰지 않도록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축구는 지대한 관심과 사랑 속에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만큼 성장하였다. 우리말도 우리의 관심과 사랑이 있어야 바르고 아름답게 꽃피울 수 있다.